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 인정 대법원 판결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다’
1944년 7월 8일: 사이판이 미군 해병대에 떨어졌다. 일본군과 민간인을 합해 6만 명이 죽었다. 사이판을 손에 넣은 미군은 즉각 B29 발진기지를 짓기 시작했다. 일본 본토가 폭격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7월 18일: 전황이 악화되자 일본 총리 도조 히데키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8월 8일: 일본 각의는 ‘반도인 노무자의 이입에 관한 건’을 결의했다. 마지막 결전을 치를 전력을 마련하기 위해 본토와 식민지를 막론하고 모든 물자와 노동력을 쏟아 부을 심산이었다. 비행기 부품·제철 용광로 제조, 선박 수리 등 특수 기능을 보유한 이로 제한돼 있던 징용 대상이 한국인 전체로 확대됐다.
8월과 10월 사이: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징용 영장을 받는다.
1945년 8월 6일: 징용 생활을 한 지 1년이 될 무렵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으로 전쟁이 끝났다.
1965년 6월 22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한일 협정)과 부속 협정의 하나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청구권 협정)을 체결했다.
__협정을 통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로부터 10년에 걸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2억 달러를 차관으로 지원받았다. 이 돈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뤄진 산업화의 밑천이 됐다. 하지만 강제징용으로 손해를 입은 사람들은 아무도 일본 정부나 해당 기업한테서 배상을 받지 못했다.
1995년: 박창환 씨 등 5명(박창환, 이근목, 이병목, 정창희, 정상화)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강제징용과 불법 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달라며 일본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 소송을 낸다.
__현지 법원은 1999년 3월 25일 청구를 기각했고, 히로시마고등재판소(2005년 1월 19일)와 일본 최고재판소(2007년 11월 1일)가 이 판결을 확정했다.
__일본 법원이 판결하면서 근거로 내세운 것은 세 가지:
-합법 징용: 박씨 등이 징용된 것은 합법적인 국민징용령에 기초해 이뤄졌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다.
-시효 소멸: 미쓰비시중공업이 일을 시키는 과정에서 일부 불법행위가 이뤄졌고 지급하지 않은 임금이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흘러 배상을 청구할 시효가 소멸했다.
-한일 협정: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정부와 개인 사이의 모든 채권 채무 관계가 사라졌다.
2000년 5월: 일본 법원의 1심에서 패소한 직후 징용 피해자들은 부산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__한국 법원도 이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심 재판부(2007년 2월 2일 선고)와 부산고등법원의 2심 재판부(2009년 2월 3일 선고)도 모두 일본 법원의 판결이 적법하다고 본 것이다. 원고 패소 판결이라는 결과를 납득할 수 없던 이들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재판부는 예상과 달리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09다22549). 국내에서 소송이 시작한 지 12년 만이었다. 재판부의 판결 요지는 이랬다.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낸 소송을 일본 법원이 기각한 것은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전제 아래 내린 판결로, 이는 일제강점기의 강제 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본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일본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한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한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해서: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조약(1951년)에 근거해 두 나라 사이의 재정, 민사적 채권 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개인 청구권의 소멸에 관해 양국 정부 간에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충분한 근거가 없다”
“국가와는 별개로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동의 없이 국민의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근대법의 원리와 상충한다”
2013년 7월 30일: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사건에 대해 부산고등법원 민사5부(재판장 박종훈)는 미쓰비시중공업은 피징용자에게 일인당 8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__재판 결과가 나오자 일본 정부는 반발했다.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해결된 사안인데 이에 반하는 판결을 일본 국가의 처지에서는 용인할 수 없다.”(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 신일본제철 상대
2012년 5월 24일 같은 날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는 다른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춘식, 고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 재판에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2009다68620). 이들도 마찬가지로 일본 법원을 거쳤고 한국 법원의 1심과 2심에서 원소 패소 판결을 받아 상고한 것이다.
2013년 7월 19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9부(재판장 유성근)는 파기환송심에서 이춘식 등 4명에게 각각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는 이춘식 등 4명(고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의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 옛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피해자 각각에게 1억원씩 배상금을 내라고 한 원심 판결을 받아들여 확정했다.
네이버 책: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273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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