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손과 발 1: 유흥희 님의 마른 발목(기륭전자 비정규직 단식 농성)
시사인 서평에 이런 언급이 있습니다: "정면 사진보다 옆이나 뒷모습, 얼굴보다는 노동자의 손과 발이 시선을 붙든다"
노동자의 손과 발 1: 유흥희 님의 마른 발목
책 속 글 '쪼그매요' 함께 보시죠. <소심한 사진의 쓸모>(정기훈 지음)
2008년 8월 기륭전자 비정규노동자들의 단식노동, 공장 정문 안내실 옥상에 차려진 천막에서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 두 사람이 두 달째 굶었습니다.
걱정되어 찾아온 민주노총 관련자가 유흥희 님의 마른 발목을 잡는 순간, 주위로 퍼져나오는 웃음을 매일노동뉴스 기자인 저자가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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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이 비닐집에 올라 바짝 마른 발목을 잡으며 걱정하자, 유흥희 씨가 "원래 쪼그매요"라며 웃었다. 굶는 사람 앞에서 그들 마른 몸을 찍는 일이 유쾌할 리 없었는데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실은 그 자리 내내 찌푸린 얼굴과 고성과 몸싸움만 있던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종종 농담을 이어간다. 살았으니 그런 것일 테다. 그러나 웃는 모습은 지면에 쓰기에 조심스러웠다. 자칫 한가해 보이진 않을까를 고민했다. 사진은 찍고 나서도 선택의 문제가 끝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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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정문 안내실 옥상에 비닐집 얼기설기 짓고 사람 둘이 굶었다. 한때 일했던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 한 달에 잔업 100시간을 했다. 100만여 원 월급을 받았다. 기륭전자 생산 라인에서 일했지만, 그곳의 직원은 아니었다. 잡담했다고 문자메시지로 해고 통보가 날아왔다.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싸움에 나섰다. 불법파견 판정이 따랐다. 회사는 꿈쩍도 안 했다. 싸움이 격해졌다. 2008년 8월 단식 두 달이 가까운 때였다. 농성장 앞에는 근조라고 적은 검은색 관 모형을 뒀다. 바짝 마른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옛날엔 사람이 분신하면 온 나라가 뒤집혀서 ‘해결하라’고 들끓었는데, 이제 한두 사람 죽어도 ‘누가 죽었나 보네’라며 금세 잊힌다”고 말했다. 살려고 죽음을 결심했다고 했다. 야만의 사회라고 덧붙였다. 구호는, 또 싸움의 말은 대개 과장되기 마련이라지만, 이들의 말에는 바짝 말라 뼈에 붙은 살처럼 뺄 것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 아랫자리를 찾아 심각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농성은 이후에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김소연 기륭전자분회 분회장은 94일, 유흥희 조합원은 67일 굶었다.
네이버 책: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768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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