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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소심한 사진의 쓸모

노동자의 손과 발 2: 문규현 신부의 손(세월호 농성장)

by 북콤마 2019. 12. 20.


노동자의 손과 발 2: 문규현 신부의 손(세월호 농성장)

손을 보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시사인 서평에 이런 언급이 있습니다:
"정면 사진보다 옆이나 뒷모습, 얼굴보다는 노동자의 손과 발이 시선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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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손과 발 2
책 속 글 '문규현 신부의 손'을 함께 보시죠

<소심한 사진의 쓸모>(정기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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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 신부의 손가락엔 온통 상처다. 잡고 있기도 힘든 작은 리본을 휴대폰에 매어주겠다고 나섰다. 자꾸만 놓쳐 떨어지는 리본을 붙들고 오래도록 씨름한다. 괜찮다고, 직접 하겠다고 말리는데도, 듣는 둥 마는 둥 씩 웃고 만다. 성공, 그게 뭐라고, 다 같이 웃었다. 여전히 길에 선 엄마 아빠는 이제 밥을 굶는다. 늙은 신부가 그 자리 찾아와 무릎 꿇고 손잡았다. 별말도 없이 웃었다. 상처투성이 아픈 손가락 내밀어 그 주변 차마 떠나지 못해 함께 밥 굶던 사람들 손을 다 잡고 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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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 신부가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휴대폰에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있다. 손목에는 여러 형태의 추모 리본이 보인다. 손은 거무튀튀하다. 밴드가 곳곳에 붙어 있다. 손을 보면 어떤 일 하는 사람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잡아보면 그 느낌이 더욱 구체적이다. 집 짓는 일 오래했던 아빠 손은 늘 거칠었다. 두툼한 군살이 여러 군데 많았다. 손톱 밑에는 까만 때가 깊었다. 상처도 많았다. 그 손은 무거운 것을 들고 뚝딱거리는 거친 일에는 어울렸으나 바늘에 실을 꿰거나 작은 장난감 고치는 일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직접 하겠다는데도 아빠는 굳이 그 거친 손가락을 움직여 내 손에 박힌 가시를 빼주곤 했다. 금방 잘될 리가 없었으니 속 터지는 일이었다. 괜한 짜증을 부리곤 했다.

20169월 세월호 농성장에서 만난 문규현 신부는 낯설지 않았다. 거기 원래부터 있던 사람처럼 움직였다. 문신부는 농성장 지키던 어느 유가족의 휴대폰에 새로 만든 작은 리본 고리 꿰느라 바빴다. 까맣고 주름지고 거친 그 손으로 잘될 리가 있나. 직접 하겠다고 말리는 사람과 굳이 자기가 해주겠다고 고집 부리는 어른들의 다툼이 흥미로웠다. 그건 일의 효율과 거리가 먼 일이었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일이 분명했다.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여기저기 상처가 많은 그 손은 그가 하는 일에 대한 유력한 단서일 테다. 평소 불리는 호칭과는 좀 먼 것도 같았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예상 가능한 일이었지만 구체적으로 떠올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니 나는 현장에서 그럴 법한 일을 짐작할 따름이다. 나중에 컴퓨터 앞에 앉아 그 구체적인 궤적을 인터넷 검색 통해 따라가곤 한다. 심증에 머문 일을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했다. 추측은 종종 들어맞았고 때때로 억측에 머물기도 했다. 손의 모양새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은 그 사람의 삶을 알아가는 일에 견줄 만하다. 카메라 앵글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월호 리본을 꿰느라 쩔쩔매던 그 거친 손을 지켜보면서 나는 속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__'문규현 신부의 손'에서

네이버 책: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768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