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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소심한 사진의 쓸모

노동자의 손과 발 3: 뒷짐진 영도조선소 노동자(한진중공업 희망버스)

by 북콤마 2019. 12. 24.


노동자의 손과 발 3: 뒷짐진 영도조선소 노동자(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손을 보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시사인 서평에 이런 언급이 있습니다:
"정면 사진보다 옆이나 뒷모습, 얼굴보다는 노동자의 손과 발이 시선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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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진의 쓸모>(정기훈 지음) 책 속 글 '기름밥 청춘' 일부를 함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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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노동자가 노동조합 게시판에 붙은 선전물을 읽고 있다. 뒷짐을 지고 있다. 작업복 차림이다. 점심시간이었다. 뒷짐은 손을 등 뒤로 젖혀 맞잡은 상태를 이른다. 보통 ‘뒷짐을 지다’는 어떤 일에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 구경만 하고 있다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뒤로 진 짐’으로 나는 읽었다. ‘뒤’와 ‘짐’의 결합인데 ‘짐’이 어떤 뜻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국어사전은 말의 역사를 기록했다. 그저 버릇처럼 잡은 손이었으니 내 해석은 과했다. 다만 거기 깊은 주름과 굳은살, 또 작업복의 기름때가 밥벌이 풍경을 가늠케 했다. 대규모 정리해고 소식이 들려오던 때였다.

건설 현장 미장일하는 아버지는 작업복 삼은 헐렁한 면바지와 체크무늬 혼방 셔츠를 버릴 줄을 몰랐다. 그게 편하다고.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시커먼 때가 원래 무늬를 덮었다. 작업복에 때가 쌓이는 동안 나는 굶지 않았고 가끔은 삼겹살도 먹었다. 세 든 방 한 칸에서 살던 여섯 식구는 좁지만 방 세 개짜리 반지하 집을 사서 이사 갔다. 아버지는 당시 유행하던 전축 시스템을 안방에 들였다. 열심히 먼지 닦아가며 아꼈다. 때 묻은 작업복엔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정리해고 소문이 돌자 2010년 1월 김진숙 지도위원이 영도조선소 담장 밖에 천막을 치고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크레인에 오르기 전이다. 뭔 그림 없나 해서 노동조합 사무실 앞을 어슬렁거리는데,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점심시간, 뭔 소식 없나 그 앞을 서성거리는 노동자가 많았다. 나이 든 사람들 걱정이 더욱 컸을 테다. 주름진 거친 손이, 기름때 짙은 작업복이 눈에 띄었다. 짧은 순간이었다. 특별한 장면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거기 많았다.

네이버 책: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768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