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독자들: 현대 정치철학의 마키아벨리,홉스,칸트 독해>(한상원 지음)
한겨레 서평입니다(2024.7.12.)
"정치철학은 '읽는 대결' 속에서 벼려졌다"
한상원 충북대 철학과 교수의 ‘정치적 독자들’은 근대 정치철학의 고전 텍스트를 현대의 정치철학자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게 어떻게 다르게 읽어냈는지 포착한 책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이라는 고전을 통해 정치라는 고유한 영역을 새롭게 이론화한 사상가다. 20세기 무솔리니는 ‘군주의 강력한 지도력’을 강조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끌어와 파시즘 정권의 권위주의적 권력 행사를 정당화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군주론’과는 결이 다른 ‘로마사 논고’ 속 ‘민주적’인 마키아벨리를 여기에 맞세우려 했으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같은 ‘군주론’을 들고 파시즘에 맞섰다. “‘옥중수고’에서 그가 도입하는 ‘현대의 군주’라는 모델은 ‘군주’를 정치적 정당이라는 집단적 주체로 해석함으로써 ‘군주 개인의 권력 독점’이라는 파시즘적인 해석에 대항한다.”
이탈리아 노동운동은 1919~1921년 토리노 중심으로 전개된 ‘공장평의회’로 불타올랐으나 결국 파시즘에 밀려 실패했다. 그람시는 이탈리아 북부로만 제한되어 남부 농민·노동계급과 광범한 동맹을 이루지 못했던 혁명 세력의 ‘정치적 지도력’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토대(경제적 관계)만을 중시하고 상부구조(정치, 이데올로기, 문화 등)를 경시한 당시 혁명 세력의 오류를 지적하고, 노동계급이 지역적이고 계급적인 고립을 넘어선 주체가 되어 보편적 집합 의지를 형성할 수 있는 길을 ‘군주론’에서 모색한 것이다. ‘국면’에 대한 강조, 헤게모니 이론과 정치정당, 진지전 개념 등이 이로부터 이어진다. “피지배계급은 광범한 동맹을 창출해 헤게모니적 체계로서 사회를 형성할 때 전쟁(진지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한때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런 그람시의 독해를 긍정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 그람시와는 아예 반대되는 독해법을 내놓는다. 그가 볼 때 마키아벨리는 목적·규범에 얽매인 ‘주체’ 자체를 상정한 적이 없기에, ‘군주론’에서 ‘인민의 집합 의지를 이끌어내는 군주’에 대한 그람시의 기대는 공상에 그칠 뿐이다. 오직 남는 것은 물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이데올로기와 그 장치(국가), 그리고 이를 여우처럼 활용하는 지배계급이다. 이렇게 후기 알튀세르에게 마키아벨리는 “(그람시가 읽어낸) 피지배계급 실천의 지침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실천의 비밀을 알려주는 인물”이 된다.
알튀세르가 이런 식으로 마키아벨리와 그람시를 독해한 배경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폐기하고 ‘유로코뮤니즘’으로 노선을 전환한 (당시)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그의 투쟁”이 있다. 당시 서유럽 공산주의는 소련과 선을 그으며 ‘국가 민주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혁명을 이루는 길을 천명했다. 그러나 알튀세르가 보기에 국가는 가공할 만한 지배 능력을 가진 이데올로기 장치인데,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마치 ‘시민사회를 통해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는 듯 이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던 것이다.
이밖에 토머스 홉스를 읽는 막스 호르크하이머·테오도어 아도르노와 카를 슈미트, 이마누엘 칸트를 읽는 한나 아렌트와 자크 랑시에르와 아도르노 등 다양한 연결망들을 통해 지은이는 “정치철학은 언제나 정치적 독자들이 수행한 정치적 독해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과거의 텍스트와의 끊임없는 대결 속에서 전개돼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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