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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덜미,완전범죄는없다4

연쇄살인범 정남규는 누구인가: <덜미,완전범죄는없다4>

by 북콤마 2021. 11. 8.

1969년 3월 1일 전북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던 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과의 관계에선 특별한 문제 없이 성장하지만, 10살 무렵 동네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이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선배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군대와 교도소에서도 성추행을 당한다. 이에 따라 대인 기피 증세와 피해의식이 심해진다.

 

1989년 스무 살 무렵 특수강도죄를 저지른 것을 시작으로 이후 절도죄, 강간 등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린다. 출소한 후에는 마음속 깊이 열등의식을 갖고 함께 살던 어머니와 동생들과도 접촉을 피하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고립된 생활을 이어간다.

 

2003년 2월 교도소에서 최종 출소한다. 자신은 다른 사람한테 늘 괴롭힘을 당하고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과 열등감을 품고 상대적으로 제압하기 쉬운 아동과 여성 등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범행을 저지르기로 맘먹는다. 이후 범행 현장에서 경찰에 잡히지 않으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같이 10킬로미터씩 달리기 연습을 하는 등 체력을 단련한다.

 

2004년 1월 14일 경기 부천에서 남자 초등학생 2명을 살해하면서 본격적인 살인 행각에 나선다. 이 사건은 범행 수법이 특이하고 범행 대상도 다른 사건들과 전혀 달라 당시 정남규의 연쇄 범죄로 추적되지 않았다. 나중에 체포된 뒤 프로파일러와의 면담 중에 우연히 단서가 잡혀 추궁 끝에 자백한다.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2년 3개월여 동안 관악, 금천, 영등포구 등 서울 서남부와 인접한 경기 지역을 돌며 총 24건의 강도상해 및 살인 행각을 벌여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다.

 

2004년 1월 30일 오전 3시경 서울 구로동의 빌라 1층 출입문 앞에서 우편물을 확인하던 50대 여성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다. 이때부터 정남규는 인적이 드문 심야 시간에 주택가의 노상에서 여성들을 노린다. 또 피해자를 앞으로 돌려 세워놓고 배와 가슴 등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는 식으로 범행한다.

 

2월 6일 저녁 7시 10분경 서울 이문동의 한 골목길에서 출근하던 20대 여성을 살해한다. 5개월여 후 붙잡힌 유영철이 이 사건은 자신이 저질렀다고 허위 자백하면서 한때 진범이 누구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재판에서 유영철은 이러한 진술을 번복한다.

 

2월 10일 경기 군포에서 아침에 우유 배달을 하던 20대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다. 이처럼 정남규는 기존의 범행 장소에 집중되는 경찰 수사를 늘 의식해 인접한 경기 지역 도시로 범행 장소를 한두 번씩 바꾼다.

 

5월 9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밤늦게 귀가하던 여대생을 살해한다. 이 사건이 언론에 집중 조명되며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제하에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연쇄살인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8월 4일 범행 지역을 서울에서 경기도로 옮겨 안양에서 단독주택에 침입해 쇠망치로 집주인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다. 이때 주로 서민층 거주 지역을 배회하다가 문이 열린 집으로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둔기를 휘두르는 식으로 범행 수법을 바꾼다. 연이은 언론 보도에 부담을 느낀 정남규는 이 사건을 끝으로 한동안 살인 행각을 멈춘다. 정남규는 자신의 범행을 다룬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 집에 보관하는 등 스스로의 범행 내용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5년 4월 6일 8개월 만에 범행을 재개한다. 안양의 다세대주택에 잠기지 않은 현관문을 열고 침입해 자고 있던 할머니와 손녀를 살해하려고 쇠망치를 휘두른다. 여기서 본격적인 방화 범죄가 수반된다. 두 피해자를 방 안에 두고 나와 밖에서 방문을 걸어 잠근 뒤, 거실에서 가스레인지를 통해 불을 붙여 불을 지른다.

 

10월 19일 새벽 5시 20분경 서울 봉천동의 반지하방을 열린 현관문을 통해 침입해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피해자의 동생은 방에 남겨둔 채 문밖에서 문을 잠근 뒤 불을 지른다.

 

2006년 1월 18일 새벽 5시경 서울 수유동의 주택에 침입해 작은방에서 자고 있던 집주인의 작은딸을 살해한다. 정남규는 불을 지르고 빠져나오면서 화재로 인해 큰딸과 아들까지 숨진다.

 

3월 27일 새벽 4시 50분경 봉천동의 2층 주택에 침입해 세 자매가 자고 있던 작은방으로 들어간다. 미리 준비해 간 파이프렌치를 휘둘러 살해한 뒤 현장에 남아 있을지 모를 자신의 족적과 지문 등을 없애기 위해 집 안에 불을 지른다.

 

4월 22일 새벽 4시 40분경 서울 신길동의 주택에 침입해 작은방에서 돈을 훔치려고 옷을 뒤지던 중 잠을 자던 20대 남성이 몸을 뒤척이자 파이프렌치를 휘두른다. 이후 아들이 대항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버지와 함께 부자가 격투 끝에 정남규를 붙잡는다. 곧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영등포경찰서 경찰들에 의해 체포된다. 경찰이 순찰차에 태우는 과정에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달아나지만, 인근 주택 마당에 숨어 있다가 금방 다시 체포된다.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던 중 정남규는 사람을 죽이고 난 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으며 구속돼 더 이상 살인할 수 없는 현실에서 아무런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죄의식조차 없어 현장검증을 진행하던 중에 항의하는 유족에게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재판을 받을 때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이라고 범행 동기를 설명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살인 그 자체를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얘기였다. 또 “내가 죽는 게 두렵기는 하지만 여러 사람을 죽였으니까 당연히 사형 선고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6년 9월 2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이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정남규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2007년 1월 11일 서울고등법원이 항소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받아들인다.

 

4월 12일 대법원이 사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한다.

 

2009년 11월 22일 정남규가 서울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4

범죄 수사에서 프로파일러의 역할과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범인의 본심을 간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조명했다.“우리는 점성술사도, 해결사도 아니고, 수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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