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시놉시스
__2018년 10월 20일 밤 10시 30분쯤. 경기 부천의 한 모텔에서 사망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자는 사망자 A씨의 여자친구 박 모(33세) 씨였다. 박씨는 119에 여덟 차례, 112에 한 차례 신고했다.
__경찰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A씨는 사망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고, 박씨는 옆에서 넋이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A씨의 사인은 항염증제 중독이었다. 박씨는 수년차 경력의 간호조무사였다.
__박씨는 “동반 자살을 하려고 A씨에게 먼저 링거를 놓고 그다음 나 자신에게도 놓았는데, 나 혼자 깨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로포폴(수면마취제) 부작용으로 경련을 일으켜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자신의 몸에 꽂은) 주삿바늘이 빠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__결혼을 앞두고 A씨가 극심한 경제적 스트레스를 호소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둘은 2년 가까이 만난 사이였다.
증거: 심증은 있지만 수사팀이 가진 것은 '진술'뿐이었다
__A씨의 죽음에 따라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등 박씨가 금전적 이득을 본 상황도 아니었다. CCTV 영상이나 살인 계획이 담긴 메모 같은 증거도 없었다.
__수사팀이 박씨의 휴대폰에서 ‘항염증제 부작용’처럼 약물로 사람을 사망케 하는 방법을 검색한 기록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이는 동반 자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검색일 수도 있기에 살인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증거는 아니었다.
단서 1: 진술 분석
__박씨의 진술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분량의 차이였다. 박씨는 A씨와 극단적 선택을 하던 10월 20일 밤의 상황을 A4 용지 한 장 분량에 빼곡히 적었다. 어떤 약물을 투여하고, 몇 초 뒤 A씨가 잠들고, 약물을 어떻게 배합해 어느 위치에 주사기를 꽂았는지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__그러나 A씨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게 된 경위에 대해선 한 줄의 설명뿐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수사팀은 이 지점에서 ‘동반 자살이 아닐 것’이라고 직감했다.
__ 사건 현장에 대한 서술은 확실한데 동반 자살 경위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면, ‘링거로 사망케 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반 자살은 거짓이다’라는 결론이 나온다. 즉 살인일 가능성이 높았다는 이야기였다.
단서 2: 살해 동기__시작은 13만원 계좌 이체
__박씨의 휴대폰 검색 기록과 대화 내역, 참고인 진술 등을 전부 넘겨받아 시간순으로 배열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검색 시간이었다. 박씨의 검색 기록은 사건 발생 즈음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__수사팀은 검색량이 급증한 시점의 첫 번째 검색어가 살해 동기일 수 있다고 직감했다. 유의미해 보이는 검색의 시작일은 사건 전날인 10월 19일이고, 그 검색어는 한 술집의 이름이었다. 박씨는 전날 자정을 갓 넘긴 때부터 이날 오전 2시 50분까지 3시간 정도에 걸쳐 초 단위로 술집의 이름을 수백 건 검색했다.
__다음날 새벽 5시부터는 점심과 저녁식사 시간도 거른 채 ‘프로포폴’, ‘항염증제’, ‘주사 방법’, ‘주사 부작용’, ‘쇼크’ 등으로 넘어갔다.
수사기관의 결론
__집착과 충동적 성향을 가진 박씨가 A씨의 외도를 의심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__술집에서 13만 원을 사용한 것을 ‘남자친구의 성매매’로 단정한 A씨가 충동적 분노를 이기지 못해 병원에서 빼돌린 약물을 활용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재판부 판단 1
__A씨에게 자살 동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박씨와 A씨 사이에 동반 자살을 계획한 정황이 없다.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 메신저 등 그 어디에서도 동반 자살을 언급한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박씨의 진술이 유일하다.
재판부 판단 2
__박씨의 체내에선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는 정도인 소량의 약물이 검출된 걸 보면서 재판부는 과연 박씨가 실제로 문제의 약물을 정맥 주사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__약물을 마시거나 빨아 먹는 경우에도 체내에 일부 흡수될 수 있으므로 체내에서 소량의 약물이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는 박씨가 자신에게도 약물을 주사해 자살 시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 판단 3
__박씨가 자신에게도 정맥주사를 놓았는데 나중에 주삿바늘이 빠지게 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학적인 소견을 인용해 반박했다. 의사의 감정서에 따르면 프로포폴은 기본적으로 항경련제라서 잘 고정된 주사는 빠지기 어렵고, 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일은 다량 약물을 투여한 경우에만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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