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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덜미,완전범죄는없다1

추천의글.권일용 프로파일러,전 경찰청 경정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by 북콤마 2018. 1. 30.

추천의 글

 모든 정황이 범인이라고 지목할 때도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다

 __권일용 전 경찰청 경정(프로파일러), 범죄학 박사

범죄는 사회현상 변화와 깊은 연관을 갖는다. 1993년 발생한 이른바 지존파사건, 1996년 이들을 모방한 막가파사건 등이 일어나기 이전, 한국 사회 범죄는 동기motive가 뚜렷했다. 치정이나 원한 등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으면 살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 중반 이후 한국 사회가 IMF 경제차관 같은 급격한 경제적 변화와 중산층의 몰락, 다양한 정치적 격동을 겪으면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죄자 개인의 분노 감정을 표출하는 범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0년대에 접어들어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등장하면서 한국 사회 구성원은 연쇄살인이라는 끔찍한 시대적 아픔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범죄들은 표면적인 이유가 없는 것들이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이 죽고 다친다. 물론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은 분명한 동기와 이유가 있다. 그 동기와 이유를 분석하는 사람들이 프로파일러, 즉 범죄심리분석관이다.

사건 현장에는 항상 과학수사 요원들이 있었다. 현장에 투입된 과학수사 요원과 프로파일러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피해자다. 거꾸로 말하면, 가장 먼저 현장에 나가 억울한 피해자를 보듬고 손을 잡아주는 경찰관이 바로 그들이다. 잔인하게 훼손된 삶을 부여잡고 있거나 이미 생을 마친 피해자들. 그래서 과학수사 요원들은 늘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힘든 일이다. 직접 범죄자를 만나거나 잔혹한 현장을 보면서 감정 이입하는 경우도 많다. 주검 냄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날이면 일을 그만둘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후배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경찰이 포기하면 피해자를 포기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처참한 죽음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 후배들이 그 무게를 느꼈으면 좋겠다. 그건 짐이 아니라 소명이다.

범인을 반드시 검거하겠다는 의지는 최근 과학수사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학수사는 궁극적으로 인권 수사다. 수사를 잘한다는 것은 범인을 빨리 잡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과학수사가 발전하면서 억울한 이를 범인으로 잡는 일이 많이 줄었지만, 더 엄격해져야 한다. ‘DNA 나왔는데 범인이 뻔하지라고 생각을 정하는 순간 과학수사는 더 발전할 수 없다. 모든 정황이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할 때도 범인이 아닐 일말의 가능성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이제 28년간의 과학수사를 마음속에 담아놓고 퇴직했지만, 내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은 후배 과학수사 요원과 프로파일러들이 반드시 끝마쳐주리라 믿는다.

이 책의 글들은 그러한 가슴 아픈 순간을 되새기며 써내려간 장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