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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기초수급의 현장을 자세히 알려주는 기사

by 북콤마 2014. 4. 17.

 

기초생활수급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네요^^

'화장실 삼남매'가 '송파구 세 모녀'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들이 자신을 찾아왔으면 어떻게 상담했을까'

'많은 복지 공무원이 세 모녀의 경우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될 수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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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 '벌'주는 희한한 제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일제조사' 실시였다. 3월 한 달간 지자체 사회복지 공무원과 통ㆍ리ㆍ반장들이 협력해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현장에서 복지 공무원들이 하고 있는 건 어려운 이를 발굴하는 일제조사가 아니라, 누가 수급자이고 누가 탈락할지를 가리는 2014년 상반기 정례 '확인조사'다. 현 제도 설계의 문제점을 수도권 지역에서 수년간 근무한 복수의 복지 담당 공무원들에게 들었다. 그 내용을 구청 복지 담당 공무원 홍재성씨(40ㆍ가명)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구청에서 6년째 복지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는 홍재성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복지 사각지대 일제조사를 실시한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를 본 뒤였다. 홍씨는 3년 전 복지부가 똑같은 제목의 공고를 올렸던 것을 기억한다. 201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공원 화장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사연이 방영되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국가가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을 찾아 보살펴줘야 한다'고 지시한 데 따른 조사였다.

당시 복지부는 3주일 남짓 조사하고 소외된 이웃 2만3000여 명을 발굴했다고 자랑스레 발표했다. 앞으로 발굴ㆍ지원 체계를 상시화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제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일이 연거푸 발생하자 복지부가 그때와 같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통ㆍ리ㆍ반장 등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활용하겠다는 방법부터 '찾아주세요! 알려주세요!'라는 홍보 문구까지 판박이다. '화장실 삼남매'가 '송파구 세 모녀'로 바뀌었을 뿐이다.

송파구 세 모녀 기사를 보고 홍씨도 생각해봤다. 이들이 자신에게 찾아왔다면 어떻게 상담했을까. 일단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된 박 아무개씨에게 긴급지원제도 정도는 적용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당뇨를 앓았다는 큰딸은 근로능력 면제를 받게 하고, 박씨와 만화가를 꿈꾸던 둘째딸은 노동 가능 연령대이므로 일을 하는 '조건부 수급자'로 상담했을 것이다. 자활사업단에 배치하거나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취업 성공 패키지' 프로그램(10개월 직업교육 뒤 자격증 취득과 취업 연계) 쪽으로 안내를 했겠지…라고 생각하던 홍씨의 표정이 굳어진다. '만약 그 딸이 죽어도 만화만 그리겠다고 했다면?' 그럴 때 홍씨가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다. "(근로능력이 있는) 딸 때문에 선생님은 수급자가 안 되십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됩니다."

많은 복지 공무원이 세 모녀의 경우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될 수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홍씨의 동료도 세 모녀라면 수급 신청은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박씨가 식당 일을 하며 벌었다는 150만원이 3인 가족 최저생계비(2014년 기준 132만9118원)보다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뇨가 만성질환이긴 해도 여러 단계가 있어서 '근로능력 있음'으로 판정될 수도 있다. 그럼 이런 말을 들었을 거다. "몇 살이세요? 150만원이요? 아유, 그럼 일하셔야지." 결국 세 모녀의 운명은 의료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주는 공무원을 만나느냐, 그렇지 않은 공무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사실상 '복불복'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상담해주지 않는 공무원이 '나쁜 사람'인 것만은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 차이도 있지만 일단 행정업무가 너무 많다. 기존 수급자 돌아보기도 빠듯한데 '발굴'은 언감생심이다. 민관 협력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통ㆍ반장과 자원봉사 인력에게 '위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개개인의 인생사를 다 고려해야 하는 초기 상담에 노력을 집중할 여건이 안 된다. 특히 1년에 두 번(2~3월과 6~7월) 돌아오는 '확인조사' 시즌에는 주민센터도, 구청도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된다. 구청 통합관리팀에 있는 홍씨가 3월 현재 하는 일이 바로 이 확인조사다.

일하면 벌주는 희한한 제도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에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건강보험료, 일용소득 등 기본 자료가 잡히면 그 결과에 따라 수급액을 조정하거나 수급 중지를 하는 게 확인조사다. "당신은 수급자인데 왜 일용소득이 있습니까? 앞으로 나가는 돈을 차감할 거예요" "당신의 아들이, 딸이, 사위가, 며느리가 돈을 이만큼 버니 생계비가 덜 나갈 겁니다(혹은 중지될 겁니다)" 따위 말을 공문이나 전화로 전한다.

본인이나 부양의무자 소득이 잡혀서 수급액이 줄어든다는 말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대부분 '정말 너무한다'이다. 구청에 찾아와 욕을 하는 이도 있고, 우는 이도 있다. 흉기로 위협하거나, '유서에 네 이름 쓰고 죽겠다'고 협박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지금 사는 걸 보고 이야기하라"고 감액 통보를 받은 수급자는 말하지만, 홍씨는 현장에 나갈 시간이 없다. 하루 종일 앉아서 매일 밤 11시까지 일하고 주말에 출근해도 시간이 모자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현장조사 없이 전산으로 수급 변동이 이뤄지는 게 태반이다.

홍씨가 보기에 지금의 제도는 '일을 하면 벌을 주는' 희한한 제도다. 예를 들어보자. 당뇨가 있어서 근로능력을 면제받은 성인 남자가 있다. 지원받는 48만원으로 살려니 방값 25만원 내고 휴대전화비 5만원 내다 보면 생활비가 부족하다(그 수급자가 알코올 의존증이라면 상황은 더 나쁘다). 이따금 일용근로를 나가 일당 10만원을 번다. 확인조사 시즌에 국세청에서 일용소득 통보가 지자체에 온다. 그럼 부정수급이니 환수를 해야 하는데, 돈을 다 써서 환수를 못한다. 앞으로 나가는 생계비에서 1~2년에 걸쳐 차감상계를 한다. 48만원 갖고도 못 살던 사람이 한 달에 43만원을 받게 된다. 또 일하러 간다. 악순환이다.

홍씨가 또렷이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주민센터에서 일할 때 그는 한 언론사의 취재를 도운 적이 있다. 혼자 사는 집에 작업실을 꾸려놓고 그릇을 빚는 60대 남성 수급자의 가정을 방문했을 때, 기자는 사진을 찍으려 했다. 나라로부터 지원을 받는 중에도 제 능력을 발휘해 일하는 모습을 찍고 싶었을 것이다. 그릇을 빚는 '그림' 자체도 멋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홍씨는 사진 찍는 걸 막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진이 나가게 되면 행복e음에는 잡히지 않은 '부업' 소득의 존재로 인해 그 수급자가 생계비를 차감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예 수급이 중지될 수도 있다. 이전에도 수급자가 부업하는 걸 그대로 내보낸 언론 보도 때문에 수급이 끊긴 선례가 있었다.

기준을 정해서 어느 정도의 소득은 불이익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이미 학생과 장애인, 노인의 경우 소득의 일정 비율을 공제해주는 근로소득공제 제도가 있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한 수급자 대부분은 1원이라도 소득이 발생하면 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계비 차감이나 수급 탈락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홍씨는 제도를 설계한 사람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는 충동을 종종 느낀다. 당신은 48만원 가지고 한 달을 살 수 있느냐고.

본인 소득 외에 생계비를 차감당하거나 수급자에서 밀려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부양의무자 제도다.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홍씨의 동료는 요즘 부양의무자에게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를 새로 받느라 정신이 없다. 개인정보보호법 강화로 부양의무자 소득을 직권으로 조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섯 명 중 네 명'은 단절이다. 그렇다 보니 가족관계 단절 사유서를 일일이 또 받아야 한다. 그 결과 단절로 밝혀지면 생계비를 더 받을 수도 있고, 소득이나 재산이 더 발견되면 중지될 수도 있다. 부양의무자 제도의 모순이 개인정보보호법 강화로 다시 한번 드러나는 셈이다.

'2촌'까지 부양의무자로 봤던 초기 제도보다는 완화됐지만, 연락도 안 되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부양의무자 때문에 수급자에서 탈락하거나 생계비를 차감당하는 경우가 여전히 빈번하다. '계부'가 정보 제공 동의서를 써주지 않아 '서류 미비'로 부적합 판정을 받는 경우도 있다. 현 제도는 계부도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녀가 취업을 사유로 생계를 달리하게 되면 그 자녀를 부양의무자로 설정해 부모의 생계비를 20만원 줄인다. '부양능력 미약.' '미약하게나마 부양능력이 있기 때문에 덜 준다'는 의미다.

제도가 현실이 요구하는 걸 못 따라간다. 결국 부양의무자 제도는 폐지돼야 하는 제도인데, 이걸 얼마나 빨리 실현하느냐가 사람이 더 죽지 않게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0월에 개편된다는 제도 역시 부양의무자제도 '폐지'나 '개선'이 아닌 '완화'에 불과하다(딸 '소득' 밝혀져 수급 탈락한 노인… 목숨 끊어 참조).

"사회복지사인지 복지 경찰인지 모르겠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현장 공무원이 유연성이라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홍씨 바람이다. 지침이 모호한 경우가 많고 그럴 때 일선 공무원의 재량이 상당한데도 '어디까지 해야 내가 다치지 않을지' 혼란스럽다. 복지부나 안전행정부, 지자체에서 하는 감사(대개 예산이 어디에서 새어나가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그런 두려움을 더 키운다. 홍씨는 한 동료로부터 '지침을 너무 확대 해석한다' '모든 사람을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하면 어떡하느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홍씨가 느끼기에, 깐깐하게 조건을 적용하거나 부정수급자를 '적발'하는 이들이 오히려 "일 잘한다"라고 평가받는 분위기가 있다. 약자를 위한 쪽으로 제도를 해석하는 사람에게 '그럼 우린 뭐가 되느냐'고 화살을 돌리는 '담합의 구조'이자 '무언의 압력'이다.

보상과 처벌이 뒤바뀐 것은 수급제도만이 아니다. 공무원에 대한 공적 추천제도 역시 누가 어려운 이들을 더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했느냐 따위는 별로 관계가 없다. 직원 투표가 아니라 경력대로, 순번대로, 혹은 윗사람에게 잘 보인 순서대로 주는 식이어서 형식적이다. 아예 복지 사각지대 발굴 여부를 '실적'으로 평가해 승진 같은 인센티브를 준다면 이 조직은 순식간에 확 바뀔 거라고 홍씨는 믿는다. 발굴을 칭찬하고 장려하는 구조를 만들지 못한 것. 그것에 대한 반성 없이 일이 터졌을 때만 '사각지대 발굴' '재량권 적극 발휘'를 요구한다면 '또 다른 세 모녀'가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당신들 언론은 항상 이럴 때만 관심을 가집디다. 왜 이때 사람이 죽는지, 시스템이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고요. 사람이 죽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요?" 홍씨는 세 모녀 사건 이후 기자들 연락을 많이 받았다. 이럴 때만 관심 있는 척하는 언론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내가 사회복지사인지 복지 경찰인지 모르겠어요."

가난이 개인의 탓이 아니라고 믿어서 사회복지 공무원이 된 그는, 끊임없이 가난한 이들이 거짓말하는 건 아닌지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구청에 '소명'하러 오는, 대개는 경직돼 있는 그의 '고객'들에게 그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여기 경찰서 아니니까 괜찮아요. 잘못된 것 있으면 바꾸면 돼요."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면 스스로 취조하는 말투가 된다. "이때 일 하셨죠?" "이 재산은 어디다 쓰셨어요?"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복지 경찰'인 것 같다. 저 부정수급자 무리로부터 나라의 예산을 지키는.

어려운 누군가를 제도권으로 끌어안기보다 이미 들어와 있는 이들을 '밀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진 제도 탓에 여전히 사람이 죽는다. 많은 죽음이 '확인조사' 기간과 겹친다. 그는 최저생계비가 현실화된 다음에는 정말로 복지 경찰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너무나 낮은 최저생계비와 비현실적인 부양의무자 제도를 알면서 '복지 경찰' 노릇을 계속할 수는 없다. 오는 10월에 제도가 바뀌어 수급자가 대폭 늘어나면, 그만큼 '솎아내기'가 더 가혹해질 거라는 의심을 홍씨는 거두기 어렵다. "사람이 법을 만드는데 이럴 수 있소." 2012년 사위의 소득 증가로 기초수급에서 탈락한 뒤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한 할머니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