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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개별급여, 개정안 문제점

by 북콤마 2014. 4. 17.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내용입니다

맞춤형 개별급여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

최저생계비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준인 '중위소득'

최저보장 기준선이 개정안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부양의무자 문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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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안도 구제 못한 비수급 빈곤층


"2월 임시국회가 끝났는데 가장 시급했던 '복지 3법'이 처리되지 못해 정말 안타깝다." 지난 3월4일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복지 3법 중 하나가 유재중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 14년 만에 '맞춤형 개별급여 체계'로 전면 개편된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2014년 10월 이를 시행할 계획이었지만, 법이 통과되지 못해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박근혜표' 맞춤형 개별급여 제도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통합급여에서 개별급여로 바뀐다. 현재는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가구에 최저생계비의 80%에서 소득인정액을 뺀 나머지를 일괄 지급하고 있다(의료ㆍ교육비는 현물 지급). 개편 뒤에는 생계ㆍ의료ㆍ주거ㆍ교육 급여별로 지급 대상 선정 기준과 급여 보장 수준이 각각 달라지고 운영 주체도 분산된다. 주거급여는 국토교통부가, 교육급여는 교육부가 담당하게 된다. 생계ㆍ의료급여만 복지부가 계속 담당한다.

둘째, 수급 대상 선정 기준이자 급여 지급 기준이었던 '최저생계비' 개념이 사실상 폐지된다. 현 제도에서는 '가족에게서 부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을 수급권자로 봤지만, 제도가 개편되면 '가족에게서 부양받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소득인정액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한 기준 이하인 사람'으로 생계ㆍ의료 급여의 수급권자가 바뀐다.

이때 최저생계비를 대체하는 새 기준이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순으로 늘어놓았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가구의 소득)이다. 즉 생계급여는 중위소득 30%(2013년 4인 가족 기준 115만원),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155만원),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3%(165만원), 교육급여는 중위소득 50%(192만원) 수준을 '고려'해 각 기관장이 수급자 범위를 결정한다.

이런 골자만 보면, 수급자는 현재 140만명에서 180만명으로 늘어나는 등 긍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와 현장 활동가들의 평가는 다르다. 이들은 '최저생계비'라는 기준이 사라지는 점을 가장 걱정한다.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수급자가 받는 모든 급여와 소득인정액을 합한 금액이 최저생계비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은 3년마다 최저생계비 계측조사를 실시하고, 조사가 없는 해에는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적용하는 방법으로 매년 9월1일 최저생계비를 결정ㆍ공포해 빈곤정책에 반영해왔다. 그런데 개정안에서는 중위소득이 수급자를 정하는 기준이 되고, 3년마다 하는 계측조사는 빈곤 실태조사로 대체된다. 급여 수준이나 대상 선정의 기준으로서 최저생계비가 의미가 없게 되는 셈이다. 최저생계비 대신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한 것은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상대적 빈곤 관점을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최저보장 기준선 법에 명시해야"


정부 계획에 따르면 생계급여의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중위소득의 30% 수준을 '고려'해 지급 대상과 급여 수준을 결정한다. 그러나 이 30%라는 최저선은 법에 명시하지 않았다. 최저생계비라는 빈곤의 절대 기준선이 무너지면서 상황에 따라 기준을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는 비판이 따른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시민단체 쪽에서 추천하는 인사가 반드시 참여하도록 돼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참여하는 한 위원은 "위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명하는 것이라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경기나 재정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기준을 낮출 수 있다. 최저보장 기준선을 법에 명시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의 또 하나의 특징을 "근로 능력자들이 자립ㆍ자활을 통해 수급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존 제도는 일을 해서 소득이 늘면 급여를 차감당하거나 수급자에서 탈락하는 구조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예전처럼 수급자가 소득이 오르면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 식으로 아무 급여도 못 받는 게 아니라, 소득이 오르더라도 생계급여는 못 받지만 의료나 주거, 교육 급여는 받을 수 있다. 급여 종류별로 선정 기준선을 달리 운영하기에 '탈수급'을 유인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도입 취지대로 '근로 인센티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상은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종전에도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 선에서 지급됐고, 교육급여 역시 개편 전부터 차상위 계층까지 지원하고 있었다. 유의미한 근로 유인 효과가 생길 거라고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노인ㆍ장애인ㆍ학생을 대상으로 수입이 생겨도 일정 정도는 불이익을 주지 않는 제도(근로소득 공제)를 구축하는 등 '돈을 벌어 성실히 신고할수록 유리한'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 이상, 돈을 벌면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는 것은 똑같다. 복지 공무원들과 수급자들의 '거짓말 감시 전쟁'도 계속될 것이다.

정부가 맞춤형 개별급여 개편에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기는 했다. 그동안에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중위소득 이하여야만 부양 능력이 없다고 봤지만, 앞으로는 '중위소득과 수급자의 최저생계비를 합한 금액 이하'의 소득도 부양 무능력으로 인정한다. 이를 통해 비수급 빈곤층 12만명을 추가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본다.

그러나 201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를 밑돌지만 기초수급자에서 제외된 비수급 빈곤층은 117만명이나 된다. 이 수치에 근거하더라도 10% 정도밖에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수급자에서 제외된 빈곤층이 (절대빈곤율을 고려하면) 250만명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을 완화하는 방향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개편안은 '1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라는 부양의무자의 범위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바뀐 제도 아래서 새로 주거급여나 교육급여만 받는 이들이 생겨나지만, 정작 부양의무자라는 족쇄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은 계속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부양의무자 폐지가 어렵다면 적어도 직계혈족의 배우자(사위 혹은 며느리 등)는 범위에서 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정부 개편안은 부양의무자 때문에 배제된 비수급 빈곤층에게 지원해야 할 예산을 차상위, 차차상위 계층 등 상대적으로 덜 가난한 사람에게 쪼개주는 정책이다. 개편안조차 사실상 수급자보다 못한 삶을 사는 비수급 빈곤층을 포기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