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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모욕.비방죄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by 북콤마 2013. 10. 28.

 

 

인터넷에 사실 적어도 처벌? ‘표현의 자유’ 제한 지나쳐

“명예훼손을 형사처벌 하는 것은 형사법의 지도 원리에도 반하는 것”

__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정민영 간사

2010년 5월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뤼가 한국의 인권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내한한 적이 있다. 당시 열흘 남짓 한국을 둘러본 프랑크 라 뤼가 UN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다수의 명예훼손죄 소송이 진실이면서 공익을 위한 표현행위에 대하여 제기되고 있고, 정부를 비판하는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중략)... 명예훼손이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형사상 범죄로 남아 있어 본질적으로 가혹한 조치이며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부당하게 위축시키는 효과를 야기한다는 점에 우려를 표한다”

명예훼손을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프랭크 라 뤼 보고관의 개인적인 견해만은 아니다. UN인권위원회 역시 2011년 7월 발행한 ‘General Comment 34호’에서 “모든 당사국들은 명예훼손의 비형사화를 고려해야 한고, 그중에서도 자유형은 절대 이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을 맞추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명예훼손죄를 비범죄화하는 추세에 있기도 하다.

“사실을 말한 경우까지 처벌하는 규정은 지나치지 않은가?”

우리 형법이 명예훼손죄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자. 형법은 제307조에서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까지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 등 출판물을 통해 명예훼손을 한 경우에는 보다 중한 형으로 처벌하고 있으며(309조), 사망한 자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도 따로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308조). 특별히 인터넷상에서의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라는 규정을 따로 두어 적시한 사실이 진실이든 허위이든 모두 처벌하고 있다.

명예훼손죄 전체를 비범죄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개인의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생각해 봐도 그렇고, 실제로 명예훼손이 심각한 법익 침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명예훼손죄의 근간을 그대로 둔다고 하더라도, 사실을 말한 경우까지 처벌하는 규정은 지나치지 않은가? 적어도 사실이라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닌가?

여기에 하나의 질문을 더해보자. 사실을 ‘인터넷상’에서 언급한 경우라면 어떤가? 인터넷 공간의 해방성을 생각해 볼 때, 인터넷상 표현에 대한 규제는 보다 완화해야 하지는 않을까? 사실을 표현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을 둘러싼 논란은 이 질문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터넷 공간 특성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 법리 적용...표현의 자유 제한할 수 밖에”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앞선 논의와 연결해 볼 때, 이 조항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고 보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이 조항은 인터넷이라는 장(場)의 특수한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기존의 매체가 일대다(一對多)의 전형적인 일방향 구조를 띠고 있었던 데 반해, 인터넷은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은 물론이고 다대다(多對多)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한 쌍방향 매체이다.

또 인터넷은 현실의 언어규범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표현공간 역시 개방적이라는 특성도 갖고 있다. 전통적 매체에서와 달리 이 공간에서는 정보를 생산하는 자와 소비하는 자, 유통하는 자가 뚜렷이 구분되지도 않는다. 인터넷이 기존의 미디어와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만큼, 명예훼손법리 역시 다르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터넷게시판에서 나타나는 명예훼손적 메시지에 대해서는 반박글을 게시하거나 댓글을 다는 등 즉각적인 반박이 가능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또한 인터넷에서의 표현행위에서는 정보생산자와 수용자가 일률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어서, 표현행위 자체가 상대적으로 개인화되게 마련이고, 그에 따라 어떠한 표현행위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내는 것 역시 일반적인 매체에서보다 어려운 면이 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인터넷 공간에 일반적인 명예훼손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상 표현, 사실 주장과 의견 표명 경계 대체로 뚜렷하지 않아...”

인터넷상의 표현에 있어, 견해의 표명과 사실 기술을 구분하는 것은 통상의 경우보다 더 불명확하다. 대법원 판례를 보자. 대법원은 인터넷상에서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사건과 관련 “어떠한 표현행위가 위 죄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경우 그 표현이 ‘사실을 적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것인가’ 또는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하는 것이라면 그와 동시에 묵시적으로라도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아니한가’를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표현행위가 의견 또는 논평이라면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나머지의 경우에는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견해를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주장과 의견 표명의 경계는 대체로 뚜렷하지 않고, 많은 경우 두 가지가 하나의 표현행위에서 뒤섞여 있다.

더구나 인터넷상 표현행위에 있어서는, 통상의 경우보다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앞서 밝혔듯, 인터넷 공간에서는 정보를 생산하는 자와 유통하는 자, 수용하는 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인터넷상에서 어떠한 표현 행위를 할 때 표현하는 자 스스로가 정보생산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뚜렷이 인식할 가능성이 다른 경우보다 낮고, 표현행위가 개인화될 여지가 크다.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이 종종 종래에 접해볼 수 없던 파격성을 띠고 나타나는 것 역시 인터넷 장(場)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특유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자연히 표현을 하는 데 있어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필요를 느끼거나 주의할 가능성도 통상의 경우보다 낮을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재량적 판단의 여지가 큰 ‘의견과 사실 구분’의 틀을 인터넷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수많은 잠재적 표현들은 형사처벌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고 이는 필요 이상의 자기검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대상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명예훼손을 형사처벌 하는 것은 형사법의 지도원리에도 반하는 것”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형벌의 최후수단성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에도 반한다. 국가에 의한 가장 강력한 제재수단인 형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가장 크게 침해하는 만큼, 입법자는 불가피한 상황에 형법이라는 사회통제수단을 최후에, 최소로 투입해야 한다.

이와 같은 형벌의 최후수단성(ultima ratio)은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남용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근대형사법이 채택한 중요한 지도원리이자 대원칙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 “무릇 형벌은 개인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가져오는 탓에 국가적 제재의 최후수단(ultima ratio)으로 평가된다”며 이 원칙을 명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헌법재판소 2003. 6. 26. 2002헌가14결정)

형법이 모든 유형의 사회적 갈등과 위험요인을 제거하거나 관리하는 만병통치약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당성의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제한된 국가의 형벌동원능력을 유해성이 심각한 범죄에 우선적으로, 효율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경제적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명예훼손의 문제는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이하가 규정하고 있는 임시조치제도나 같은 법 제44조의 10에서 정하고 있는 명예훼손 분쟁조정 제도, 민사상 손해배상제도 등의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형사제재 이외의 수단을 통해 명예훼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견해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는 위 제도들을 보완해 해결할 문제이지, 그것이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을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볼 때,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형벌의 최후수단성이라는 형사법의 지도원리에 반하는 것이며, 사회 전체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도 필요 이상의 과도한 제한이다.

인터넷의 등장은 표현의 자유를 촉진시켰지만, 다른 한편으로 명예훼손의 위험을 가중시킨 것이 사실이다. 다만, 명예라는 법익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조화로운 해결은 형사처벌 이외의 다른 가능성들까지 충분히 검토하는 과정 속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은 일견 손쉬운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제한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신중해야 할 것이다.

허위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제쳐두더라도,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처럼 사실을 적시하는 표현행위까지 형사처벌 규정을 두는 것은 공론장으로써 인터넷 장(場)이 가진 무한한 잠재성을 무력화 할 수 밖에 없는 만큼 재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