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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아직살아있는자전두환

<아직 살아있는 자> 한겨레 6월10일 리뷰

by 북콤마 2013. 8. 13.

한겨레 한승동기자의 리뷰입니다. 6월 10일경 리뷰 중에 가장 자세히 소개된 것. <악의 탐구에는 시효가 없다>라는 제목, 인상적이고/ 비자금, 광주항쟁, 미국에 대한 시각 등, 책 속에 주요한 이슈를 언급했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자, 전두환
고나무 지음/북콤마

출판사 시공사 대표인 장남 전재국씨가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만든 것과 관련해 다시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른 전두환 전 대통령 은닉재산 추징문제. 마치 이에 맞추기라도 하듯 ‘전두환의 모든 것, 그리고 그의 시대’를 추적한 책 <아직 살아 있는 자, 전두환>이 나왔다. ‘뉴저널리즘’적인 접근방식을 취한 이 책은 좀은 색다르다. 지은이 고나무(37) <한겨레> 기자는 “뉴저널리즘이란 긴 호흡의 취재와 소설의 표현법을 빌려 일간지 기사의 수준을 뛰어넘자는 움직임”이라며 미국 르포 작가 톰 울프의 얘기를 빌려, 인물 취재를 할 때 가족관계, 소득수준, 종교, 말투, 음식 취향 등 한 인간을 구성하는 총체적 요소, 즉 ‘삶의 조건’까지 취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정보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에 대한 분석과 평가까지 들어간 호흡 긴 잡지기사 스타일의 글쓰기다.

 

전두환 측근과 정적 인터뷰

방대한 미 외교문서 파헤친
‘악마적 시대’에 대한 르포

 

그의 말대로 이 책에는 전두환과 그의 재산, 화술, 그가 좋아한 골프, 폭탄주, 청와대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측근들, 정적들, 그의 재산을 숨겨준 사람들, 군대 시절 동료들, 그를 만나고 관찰한 미국 관리들, 그의 전기를 쓴 작가, 그와 술을 마신 호텔리어, 조갑제, 배순훈, 예춘호 등이 등장해 전두환과 그의 시대를 얘기한다. 지은이는 이런 등장인물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전자우편 등으로 교신했다. 전두환 시절 본국 정부와 교신하면서 방대한 기록을 남긴 당시 주한 미국 관리들 얘기를 듣기 위해 지은이는 기밀해제된 미국 외교문서 더미까지 뒤졌다. 그리고 그 시절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주요 정치인과 관료들의 회고록을 2년 동안 줄창 읽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나름의 탄탄한 준비작업을 거쳐 나온 것이다.

 

30대가 지금 시점에서 30여년 전의 시대를 해석한 이 책의 첫 관심사는 오는 10월 시효가 끝나는 전씨에 대한 추징금 2205억원. 전씨는 정치활동에 다 써버리고 가진 게 29만1000원뿐이라고 했으나 지은이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딸 전효선에게 증여된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의 땅 2만6876㎡(8062평)를 대표적인 근거로 들이댄다. 전씨는 지금까지 1672억여원의 추징금을 미납했는데 관양동 땅이 명의 신탁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 추징대상이 된다. 아버지 비자금과 관련해 자식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연좌제가 아니냐, 전씨의 처남 이창석씨가 처남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지 않으냐는 주장도 지은이는 근거 없다며 이유를 제시한다.

광주항쟁 때의 미국 개입 여부도 관심거리.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의 일부 직원들은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가 광주 시민과 군부를 중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글라이스틴은 한국 국내문제에 개입해선 안 된다며 거절했다. 고 기자는 이를 두고 미국이 광주학살을 묵인했다는 운동권 일부의 비난은 이해할 만한 것이라며, “우리(미국)는 전두환이 영악하게 모든 권력을 장악하려 움직이는 동안 힘없는 관찰자에 지나지 않았다”고 변명한 존 위컴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의 얘기는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고 기자는 “미국 정부가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하는 데 유리한 태도를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종적인 결과를 결정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 국민 자신들”이라고 한 그레그 브라진스키 조지워싱턴대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증오는 미국이 아니라 동시대 한국인에게 돌려져야 한다”고 말한다. “광주의 죽음에 침묵한 서울, 경상도, 충청도, 제주도, 강원도의 주민들이 질책받아야 한다. 당대의 청와대 고위관료, 정치인, 경제인들이 대국의 외교관보다 냉혹했다.”

 

고 기자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면죄받을 수 있다는 얘긴 아닐 것이다. 예컨대 제주4·3항쟁이나 보도연맹 학살 등의 경우 거기에 제대로 항변하고 저항하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증오의 화살을 돌리면서 분단과 냉전전략, 친미 단독정부 수립을 위해 그런 상황을 조성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또 한 가지, 우유부단한 피해자로 묘사돼 온 최규하 당시 대통령을 전두환 체제 수립의 적극적 협력자로 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때 최규하가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의 불법성을 다른 군 장성들에게 알리고 하루 이틀만 버텼더라도 전두환의 합수부 쪽은 제압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최규하는 그러기는커녕 전두환을 지지했다. 도쿄고등사범학교를 나와 만주국 행정관료를 지낸 최규하, 일본의 대표적인 정한론자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신을 떠받든 육사11기 교육내용, 그리고 일본 육사와 만주군관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이 된 군 현실.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친일’이다.

한승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