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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김영란 대법관 추천사

by 북콤마 2015. 8. 11.

 


** 김영란 대법관님의 추천사를 게재합니다. 꼼꼼히 교열해주시고, 다정다감한 시선으로 지켜봐주신 대법관님께 감사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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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호모 사케르의 삶

김영란 전 대법관

우리가 흔히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을 부르는 재일동포’ ‘재일교포라는 용어는 한국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단어라면, ‘在日(재일)’이라고 쓰고 자이니치라고 읽는 단어는 식민지 시절에 건너간 조선인과 후손을 가리키고 식민지 이후 이민자에게는 쓰지 않는 단어라고 한다(35). 일본국적이든 한국적이든 국적과는 상관없는 단어이고,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선이라는 나라를 전제하는 개념이어서 역사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이니치 변호사를 중심으로 그들의 정체성과 연관된 활동을 좇아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게는 몇 가지 풍경이 펼쳐졌다.

첫째는 유고슬라비아의 시인 밀로라드 파비치가 쓴 카자르사전에 나오는 풍경이었다. 7~10세기경 지금의 조지아(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가 있는 지역을 다스리던 카자르제국에 대한 소설이다. 가장 번성하였을 때의 카자르제국은 북쪽으로는 볼가강, 서쪽으로는 드네프르강, 남쪽으로는 흑해 북안까지 미치고, 헝가리계의 마자르인, 고트인, 크리미아반도의 그리스인, 볼가강 인근지역의 불가리아인, 그리고 수많은 슬라브족을 지배했다고 한다. 비잔틴제국과 아랍제국을 잇는 통상 국가로 번성하던 카자르는 10세기에 들어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세력에 밀리면서 몰락의 길을 간다. 그 후 카자르제국의 이름은 역사적 기록에 자주 나오지만 카자르어는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 8세기경 카자르의 지배자인 카간은 그리스정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중 유대교를 국교로 채택했는데, 이 소설은 그가 국교를 정하기까지 벌어지는 세 종교 간의 논쟁이 중심 내용이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나치의 박해를 받게 되는 동유럽과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때 유대교로 개종한 카자르인의 후손이었다고 한다(신현철 옮김, 중앙M&B, 1998. 이윤기 작품 해설 꿈과 상징으로 이루어진 행복어사전’. 2012하자르사전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자이니치들은 한마디로는 요약이 불가능한 이 소설에서 국가와 언어를 잊어버린 카자르인들처럼 여겨졌다. 책의 말미에 실린, 이스탄불의 킹스턴 호텔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목격자인 여종업원을 증인 신문하는 장면을 보더라도 그 유사성은 쉽게 드러난다.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보자.(369~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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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증인은 국적이 어떻게 됩니까?

증인: 나는 카자르인입니다.

검사: 무슨 말을 했어요? 나는 그런 나라에 대하여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증인은 어느 나라의 여권을 가지고 있습니까? 카자르 여권입니까?

증인: 아닙니다. 이스라엘 여권입니다.

검사: 그렇다면 이스라엘 국적이군요.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카자르인이라면 어떻게 이스라엘 여권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 민족을 저버린 것입니까?

증인: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카자르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동화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유대교를 받아들였고 이스라엘 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랍인들이 모두 유대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아랍인으로 남아 있겠습니까?

검사: 하지만 거기에 대해 논평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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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요네하라 마리의 서평집인 대단한 책”(이언숙 번역, 마음산책, 2007)에 나오는 풍경이다.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이자 작가로 일한 그녀의 경력 때문인지 그녀가 읽고 평한 책들은 미국이나 유럽을 통해 들어오는 책들로 여과된 한국의 독서 시장에 다채로운 색깔을 부여해왔으므로,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 서평 중에 일본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낸 중학교용 역사 교과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반대로 이 교과서 채택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한 집필자들이 펴낸 역사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철저한 검증 Q&A를 재미있게 읽었다고 쓴 부분이 있다. 이것도 길지만 인용해보기로 하자.(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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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역사 교과서에는 러일전쟁이 구미 열강의 식민지가 된 나라들의 지도자들에게 격려가 되었다는 기술이 있다. 네루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재미있는 세계사에서 일본이 강대한 유럽의 한 국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는데 어찌 우리 인도라고 승리를 거두지 못하겠는가?’라고 한 말을 인용했는데 이에 대해 검증 측은 같은 네루의 글 중에서 자서전에 나와 있는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거둔 승리가 아시아 여러 나라 국민을 얼마나 기쁘게 하고 어깨를 덩실거리게 하였는지 우리는 보았다. 하지만 그 직후의 성과는 소수 침략적 제국주의 국가가 하나 더 늘어난 정도의 결과였다. 이 참담한 결과를 가장 먼저 맛보아야 했던 나라가 조선이었다라는 글을 올려 이 글이 일본의 승리가 가진 양면성을 전해주어 인용에 더 적합하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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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열하기로 들면 끝이 없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 풍경만 더 떠올려보기로 한다. 1994년 오에 겐자부로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만연원년의 풋볼속에 나오는 풍경이다. 이 부락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나자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을 와 살고 있던 곳의 토지가 숲에서 강제 노동을 했던 그들에게 불하되었다. 그런데 백승기라는 남자가 이를 전부 사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그런 식으로 계속 부를 축적한 다음 동네에 현대식 슈퍼마켓을 세워 슈퍼마켓 천황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주인공과 부락의 주지승과의 대화 속에 나오는, 그 남자에 대한 부락민들의 미묘한 태도를 직접 인용해 본다(박유하 옮김, 고려원, 2000, 156. 2007만엔원년의 풋볼이라는 제목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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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혹 그가 이미 일본에 귀화했다고 하더라도 조선계 사람한테 천황이라는 호칭을 부여해준 건 이 골짜기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일답게 뿌리 깊은 악의에 차 있네요. 근데 어째서 아무도 그 일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단순해요, 미쓰 씨. 골짜기 사람들은 20년 전에 강제로 끌려와 숲으로 벌채 노동을 나갔던 조선인들한테 이젠 경제적인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한 감정이 안 보이는 곳에 쌓여 일부러 그를 천황이라 부르는 원인이 된 거죠. 골짜기는 말기 증상을 보이고 있어요!”

정말 말기 증상일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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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1995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개념을 세계 철학계에 던졌다. 호모 사케르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는 사람을 뜻하며(호모 사케르: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 45) 종교 공동체 그리고 모든 정치 생활에서 배제되고 자기 부족의 의례에도 참여할 수 없으며 어떤 유효한 법률행위도 수행할 수 없다. 게다가 누구든지 그를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해 그의 실존 전체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벌거벗은 생명으로 축소되며, 따라서 끊임없이 도망치거나 아니면 외국에서 피난처를 찾아내지 않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매순간 무조건적인 죽음의 위협하에 놓여 있는 한, 그는 바로 그 때문에 자신에게 추방령을 내린 권력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또 매 순간 이런 사실을 의식해야만 하며 추방령을 회피하고 따돌릴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내야만 한다.”(345) 그리고 근대 정치의 특징은 원래 법질서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던 벌거벗은 생명의 공간이 서서히 정치 공간과 일치하기 시작하는 것이며,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더 이상 정치권력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한다(47).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의 사례로 유대인 수용소의 유대인들이나 심층 코마 상태에 빠진 신체 등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을 호모 사케르의 한 사례로 드는 논의가 있다. 이중, 삼중의 배제에 의해서만 대한민국과 북한, 일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이니치의 삶이야말로 호모 사케르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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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들 자이니치들이 경계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여러 풍경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가장 뭉클한 장면은 1976년 한국적으로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귀화를 거부해 사법연수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던 김경득과 그가 사법연수소에 채용되어 변호사가 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당시 일본 최고재판소 인사과장 이즈미 도쿠지가 연출했다. 2002년 일본의 최고재판소 재판관이 된 이즈미 도쿠지가 2004년 대법정에서 김경득 변호사를 만나는 부분이다. 당시 김경득은 도쿄도 보건소의 관리직 시험에 응시했으나 일본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원서 접수가 거부된 것을 문제 삼은 정향균 사건의 변호사였다. 김경득은 변론을 하기 위해 일어났으나 10초가 지나고 20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고 있었다고 한다. 김경득 변호사가 대리한 정향균은 패소했고 이즈미 도쿠지 재판관은 패소 판결을 반대한 2명의 재판관 중 한 사람이었다. 승소, 패소를 떠나 30년 가까이 이어져온 두 사람의 인연이 만든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정말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