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간도서/민간인사찰과 그의주인

경향신문 인터뷰. 장진수 주무관

by 북콤마 2013. 12. 11.

 

경향신문. 12월 11일. 장진수 주무관과의 인터뷰입니다

채동욱 검찰총장 관련하여 청와대의 사찰 개입 의혹이 강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조오영 행정관이 제2의 장진수로 나아갈지

제2의 민간인 불법 사찰로 전개될지...

 

-----------------------

대법서 유죄 받은 장진수 전 주무관

“법원, 공익제보 사회 기여 참작 안 해… 제보자에 불이익 없는 제도 만들어야”

지난해 봄, 하급직 공무원의 폭로로 감춰졌던 ‘MB정권 청와대의 비리’가 드러나는 영화 같은 일이 있었다. 지난 5일 경향신문과 만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40)은 “문제의식 없이 위에서 결정하는 일을 따르는 공무원으로 살아왔지만, 양심 고백 이후에 옳고 그른 게 뭔지 배웠다. 진실을 밝히고 죗값을 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2010~2012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수사 당시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폭로한 주인공이다. 이날은 공익제보자인 그에게 대법원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지 1주일이 지난 날이다. 장씨는 “정부가 대선에 개입하고, 종북몰이 상황까지 오게 된 출발점은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불법사찰이라고 생각한다”며 “대법원 판결이 났지만 민간인 사찰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 ‘증거인멸 지시’엔 무죄 받아
불법사찰 폭로로 공직 잃어도
진실 밝히고 지금은 마음 편해


- 선고 당일 심정은 어땠나.

“판결이 나오고 지인들이 달래준다고 연락이 많이 왔다. 저보다는 아내 걱정에 바로 집으로 왔다. 아내가 억울하다고 밤까지 펑펑 울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댓글 조작해놓고도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기소도 안됐는데, 진실을 얘기해봐야 이렇게 파면되는구나 본보기 삼은 것 같다’고 하더라. 달래느라고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고, ‘내가 대신 잘 살겠다’고 달랬다. 이달 말부터는 월급이 끊기니 생계 문제는 걱정이다. 어쨌든 유죄판결에도 나는 당당하다. 국민들이 인정해주고 내 얘기 들어주고, 진실만 말하니까 잴 것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서 편하다.”

- 당시 폭로를 결정한 게 후회되지는 않나.

“폭로하기 전엔 잠 못 자는 날이 많았다. 나 스스로에게도 화가 나고, 내가 사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끌고 다니며 손바닥 위에서 갖고 논 사람들에게 너무 화가 났다. 폭로 이후에는 홀가분했다. 그걸 얘기 안 하면 살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앞으로 정말 힘든 처지에 놓이더라도 진실을 밝히지 않은 것보다는 마음이 편할 테니 후회는 안 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 사실 농담으로 하지만 심각한 말이다. 힘없고 돈 없으면 처벌받는다, 부조리한 현실을 실제로 겪었으니까, 이걸 배우라고 이런 일이 생겼나 보다 생각한다.”

- 판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기본적으로 승복 못한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 절차가 없는 게 안타깝지만, 어떻게든 추가적인 법률적 방안을 검토하고 기회가 될 때 조치를 하려고 한다. 저한테 증거인멸을 지시했던 진경락 과장은 무죄를 받았는데, 지시받은 나는 유죄다. 진 과장이 증거인멸을 나에게 교사한 혐의는 인정이 돼야 하는 건데 그 부분이 적용되지 않았다. 법원이 법리를 자기들 편한 대로 고무줄처럼 적용했거나, 혹은 외부적 다른 요소가 있었는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 판결문에 공익 제보에 대한 고려 부분은 없었나.

“증거인멸은 범죄를 밝히지 못하게 한 죄인데, 결국엔 내 폭로를 통해 추가 범죄를 밝혀냈으니 그 점을 감안해줘야 하지 않나. 그러나 판결문에는 내 공익제보가 기여한 부분이나, 관련한 정상 참작에 대한 내용이 아예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나 때문에 다들 겁나서 공익제보를 안 할 것 같다. 공익제보자들에게 확실한 안전장치가 될 제도를 고민해서 법률적으로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 그러면 공직에서 비리를 봐도 다들 무슨 피해가 올까 싶어서 얘기 안 하고 부정하고 입을 다물게 될 거다. 묵인하는 건 동조와 마찬가지고, 그건 국민 공복으로서 봉사할 공무원의 헌법상 의무를 행하지 않은 거다.”

- 당시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뭔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한 파렴치한 공무원으로, 모두가 날 그렇게 봤다. 그게 민간인 사찰 증거인지도 몰랐지만, 알았다고 해도 그냥 청와대나 위에서 결정했으니 하는가보다 생각했을 거다. 시키는 거라도 이게 감옥 갈 일이구나 알았으면 안 했을 거다. 내가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가기 전에도, 점검1팀이 2008년에 김종익씨(전 KB한마음 대표) 사찰서류를 동작경찰서에 수사의뢰한 것 때문에 내부에서 왜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을 조사하느냐고, 문제되면 책임지라는 둥 소란이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다. 이후에는 그런 부분을 굉장히 은밀하게 진행해서 내가 뭘 알기 어려운 상태였다. 내가 법적으로 유죄여도 진실을 사람들이 알아준다고만 해도 괜찮겠다는 심정이었다. 지금이 공무원으로서 마지막 상황이라면 내가 뭘 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진실을 밝히는 거였다. 공무원으로서 마지막 도리는 다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 얘기가 증거가 부족할 수도 있는데 시민들이 다들 진실이라고 생각해 주셨다.”

-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라면.

“그냥 편한 일을 하고 싶었다. 몸 쓰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무거운 물건 배달하러 건물에 들어가면, 한여름에도 시원한 데서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서 일하고 있었다. 물론 그 사람들도 나름 힘든 게 있겠지만, 나도 저렇게 일하고 싶었다. 시골 부모님들 바람도 그런 거였으니까. 공무원이 되어서 국민에게 봉사해야지 하는 거창한 생각은 없었다. 사회 정의 같은 데도 무관심한 편이었다. 고향이 경북 문경인데, 보수적인 지역이다. 서울로 대학을 가니까 학생들 데모한다고 캠퍼스에 최루탄이 가득했다. 학교에 탱크도 들어왔다. 나는 그때도 뭐가 문제인지를 몰랐고 ‘학생시위’도 보기만 하고 가담하지 않았다.”

- 그랬던 사람이 공무원 신분으로 정권 비리를 알린 공익제보자가 된 게 극적이다.

“공무원이 된 뒤에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게 많았구나 싶었다. 헌법과 국가, 뭐가 옳고 그른지 등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첫 부임지가 총리실이었는데, 과거사 규명 관련 일들이 진행되는 걸 보면서 현대사에 대해 새로 생각하게 된 게 많았다. 참여정부 때 총리실에 있었는데 국회로 지원업무를 많이 갔다. 국회의원들이 대정부 질문하는 걸 보면, 당시 한나라당이 억지로 질문하고 비난하는 게 다 보인다. 우리가 진행하던 정부 정책이 물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서민을 위해서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국회 질의를 들으면 다 올바른 비판이고 지적이었다. 그런데 고위 공무원들이 그걸 회피하려고 온갖 말장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무원으로서 사기가 떨어졌다. 2008년에 광우병 쇠고기로 촛불 일어날 때, 정부청사에서 내려다보면 촛불이 막 보였다. 참여정부가 쇠고기 수입을 협상 카드로 내내 쥐고 있던 걸 이명박 정부가 바로 통과시킨 맥락을 다 아는 입장이었다. 촛불 들고 나온 시민들이 맞지, 내가 공무원이니 저기 안 나갔지 집에 있으면 나도 나가겠다 생각했다. 이명박 정권에 깊숙이 반발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전혀 표시 안 냈고 오히려 그쪽 편인 양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혹시 불이익이 있을지 모르니까. 지금도 아마 공무원들 그럴 거다.”

- 판결받고 나서부터 페이스북에 연재 시작한 ‘장진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첫 발령받아 불법 활동비를 전달한 이야기, 이영호 비서관·최종석 행정관·진경락 과장 등과의 일화와 상황 묘사가 세세하다.

“공무원이었다면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앞으로 실을 계획이다. 최근 부정선거 개입, ‘종북몰이’ 등 중대 현안도 많지만 나는 ‘MB정권’의 민간인 불법사찰이 최근 시국부터 4대강 사업, 광우병 쇠고기, 용산참사 등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사건들의 출발점에 있다고 본다. MB정권 당시 촛불이 켜지자, 당황한 정부는 정부 비방을 못하게 하려고 ‘누가 촛불을 들었느냐’ 캐고 다니고, 그러다 김종익씨를 사찰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겁을 먹고, 스스로 검열하게 되고 위축이 된다. 사찰이 작동을 하니까 정부가 이제 시민 반발에 상관없이 언론사 사장을 내몰고, 4대강 사업을 하고 온갖 일을 밀어붙이고, ‘좌파’ 딱지 붙여서 탄압하는 게 가능한 환경을 만들었던 거다. MB정권의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은 대법원 판결이 났다고 끝나서는 안되는 이야기다.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시민들이 응원해주시면 굉장히 고맙다. 아내도 같이 보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힘이 난다고 하더라. 내가 공익제보를 안 했으면 그런 관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겠나. 이렇게 다들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항상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