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스위스월드컵 예선 1~2차전.
우리나라가 1승 1무를 거두고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것은 1차전에서 5-1로 대승한 게 결정적이었다.
__그런데 첫 한일전인 1차전에서 후반전 득점자와 순서가 제각각이다. 당시 한일 양국 보도를 보면, 최광석과 정남식, 최정민의 득점 순서와 횟수가 뒤죽박죽인데 대한축구협회는 명확한 기준 없이 이 가운데 하나를 공식 기록으로 삼았다.
__대한축구협회는 홈페이지에 당시 경기 득점자로 전반 22분 정남식, 전반 34분 최광석, 후반 23분 최정민, 후반 38분 정남식, 후반 42분 최정민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당시 한일 양국 언론은 조금씩 다르게 파악했다.
__한국의 전반 2골 득점자와 순서는 모든 언론사가 동일하게 적었지만 후반 3골 득점자와 순서는 차이가 났다.
경향신문: 최광석-최정민-최정민
조선일보: 성낙운-최정민-최정민
동아일보: 최정민-정남식-최정민
닛칸스포츠: 성낙운-최광석-정남식
요미우리: 최정민-최광석-정남식
__특이하게도 조선일보는 한국의 세 번째 득점자가 성낙운이라고 적었는데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이름이다.당시 일본 스포츠 신문인 닛칸스포츠도 성낙운을 한국의 세 번째 득점자로 적었다.
__따라서 대한축구협회는 동아일보 기사만을 참고해 공식 기록으로 남긴 것으로 보인다. 대한축구협회는 경기 기록지가 없다 보니 훗날 신문 자료를 통해 득점자를 정리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오류 가능성이 존재한다.
__일제강점기 이후 한일 간 축구 역사를 자세히 다룬 책 <日韓キックオフ伝説>의 저자 오시마 히로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외모가 비슷한 선수들이 진흙탕 속에서 엉키면서 득점 선수를 분간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__당시 경기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들은 모두 사망했고 양국 축구협회는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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