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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최초의 한일전

최초의 한일전 득점 기록 미스터리: <최초의 한일전>

by 북콤마 2022. 5. 2.

1954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스위스월드컵 예선 1~2차전.

우리나라가 1승 1무를 거두고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것은 1차전에서 5-1로 대승한 게 결정적이었다.

__그런데 첫 한일전인 1차전에서 후반전 득점자와 순서가 제각각이다. 당시 한일 양국 보도를 보면, 최광석과 정남식, 최정민의 득점 순서와 횟수가 뒤죽박죽인데 대한축구협회는 명확한 기준 없이 이 가운데 하나를 공식 기록으로 삼았다.

__대한축구협회는 홈페이지에 당시 경기 득점자로 전반 22분 정남식, 전반 34분 최광석, 후반 23분 최정민, 후반 38분 정남식, 후반 42분 최정민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당시 한일 양국 언론은 조금씩 다르게 파악했다.

__한국의 전반 2골 득점자와 순서는 모든 언론사가 동일하게 적었지만 후반 3골 득점자와 순서는 차이가 났다.

 

경향신문: 최광석-최정민-최정민

조선일보: 성낙운-최정민-최정민

동아일보: 최정민-정남식-최정민

닛칸스포츠: 성낙운-최광석-정남식

요미우리: 최정민-최광석-정남식

 

__특이하게도 조선일보는 한국의 세 번째 득점자가 성낙운이라고 적었는데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이름이다.당시 일본 스포츠 신문인 닛칸스포츠도 성낙운을 한국의 세 번째 득점자로 적었다.

__따라서 대한축구협회는 동아일보 기사만을 참고해 공식 기록으로 남긴 것으로 보인다. 대한축구협회는 경기 기록지가 없다 보니 훗날 신문 자료를 통해 득점자를 정리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오류 가능성이 존재한다.

__일제강점기 이후 한일 간 축구 역사를 자세히 다룬 책 <日韓キックオフ伝説>의 저자 오시마 히로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외모가 비슷한 선수들이 진흙탕 속에서 엉키면서 득점 선수를 분간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__당시 경기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들은 모두 사망했고 양국 축구협회는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최초의 한일전

한국 축구는 일본 축구를 상대할 때마다 간절하고 절실했다. 축구 경기가 아니라 마치 전투를 치르는 듯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도 그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1954년부터 2022년까지의 한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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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한일전 당시 재일동포들이 직접 만든 경기 브로슈어.선수 모습을 그려 넣은 앞면 표지. 사진 이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