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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판결2008~2013년92선

한겨레 최원형기자 리뷰 '여긴 마치 수챗구멍 같아'

by 북콤마 2014. 4. 4.

자극적인 인트로로 글을 시작했네요. 정치 실종이라는 말처럼 정치적 해결의 장이 사라진 요즘

왠만한 사회 현안은 사법부한테 떠넘겨지는 현실을 '여긴 마치 수챗구멍 같아'라는 말로 풀어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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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만으로는 풀기 힘든 문제 여실
2014.04.04

<한겨레21> 취재팀의 <올해의 판결>

“여긴 마치 ‘수챗구멍’ 같아.” 이른바 ‘법조’ 출입을 하던 한 기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건이 언론의 문제제기로 대중의 관심 사안으로 떠오른다. 사법부의 영역으로 들어간 사건은 필연적으로 법원의 판결이라는 종착지로 흘러간다. 이 사회에서 일어난 온갖 일들이 이리저리 흐르고 흐르다 결국 법원의 판단으로 매듭지어지는 현상을 꼬집은 게 바로 ‘수챗구멍’의 비유다.

<한겨레21>은 2008년부터 해마다 ‘올해의 판결’을 선정하고 발표하는 작업을 해왔다. 법원의 판결은 당사자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를 밝게 비추고 좀더 나은 사회를 앞당기는 데 기여한 판결들”을 새겨보자는 취지다. <올해의 판결>은 지난해까지 6년 동안의 ‘올해의 판결’ 결과를 한데 묶은 책이다. 묶어보니 ‘집회의 자유’ ‘노동’ ‘형사·사법’ ‘여성’ ‘과거 청산’ ‘소수자 인권’ 등 다양한 부문에서 모두 92개의 판결이 ‘올해의 판결’로 꼽혔다.

기본적으로 법률이란 것이 보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 의미로 ‘올해의 판결’로 꼽혔던 판결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상식’이 무엇인지 명확히 판단해주는 구실을 했다. 따라서 이를 꼽는 행위는, “훌륭하다”는 상찬이 아니라 “당연한 일을 잘해냈다”는 격려다.

그러나 판결과 관련된 당사자들의 실제 삶이나 판결을 두고 끝없이 이어지는 법리 공방을 보면, 이처럼 상식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알 수 있다. 특히 6년 동안의 판결들을 한눈으로 보다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건이 있다. 상식을 법정에서 판가름하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 일인지, 법원 판결만으로는 풀기 힘든 현실의 문제가 얼마나 강고한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올해의 판결>에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관련 판결이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등장한다. 2008년 ‘최고의 판결’로 꼽힌, “법 개정 전 불법파견도 2년을 넘기면 원청업체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대법원 판결도 여기에 영향을 줬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최병승씨는 2010년 대법원에서 “사내하청 업무는 성격상 도급이 아닌 파견이기 때문에, 파견 기간이 2년이 넘은 최씨는 원청인 현대자동차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2012년에는 부당해고 관련 소송에서 또다시 대법원으로부터 같은 취지의 판결을 얻어냈다. 같은 처지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표한 소송이었다. 그러나 이런 판결들에도 현대차는 버틸 때까지 버텼다. 2012년 최씨가 고공농성에 돌입한 뒤에야 최씨만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인사 명령을 내렸고, 이에 대해 최씨가 거부하고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비정규직 노동자 일부를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는 꼼수를 보였다. 시민들이 두 차례나 ‘희망버스’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했지만 아직 달라진 것이 없다.

최원형 한겨레노조 미디어국장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6&aid=0000031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