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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일본제국 vs. 자이니치

김경득 스토리, 일본 최초 외국적 변호사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by 북콤마 2015. 8. 12.



** 책 속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휴먼드라마는 역시 '김경득과 이즈미 도쿠지'의 만남, 둘의 인연입니다.

간단히 김경득이 한국 국적으로 일본 변호사가 된 사연을 정리해봤습니다. 김경득은 1970년대 일본에 만연한 내셔널리즘에 균열을 낸 인물이었습니다. 또 이후 계속 나올 자이니치 변호사의 시작이었습니다.

KBS, 'TV 책을 보다' 주요 클립 http://tvcast.naver.com/v/48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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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득 스토리


김경득(1945~2005), 일본 최초 외국적 변호사.

1972년 자이니치 김경득은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치기로 마음먹는다.

공사판에서 일을 하고 와세다대의 주물연구소에서 숙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험공부를 한다. 

2년 뒤인 1976년 10월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하지만 국적의 장벽!

사법수습생은 일본국적이어야 했다.

외국적으로 시험에 합격했더라도 모두 귀화했다.

그때까지 외국적으로 합격한 사람 중에 귀화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김경득은 도쿄 최고재판소 사법연수소에 수습생 채용 신청서를 낸다. 국적은 한국이었다.

인사국 직원이 귀화해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김경득은 한국적으로 사법연수소에 들어가겠다고 계속 주장했다.

김경득은 당시 최고재판소 인사국 임용과장인 이즈미 도쿠지를 만나 마주 앉았다.

"저는 대한민국적 그대로, 김경득이라는 이름 그대로 연수소에 들어가겠습니다."

이즈미를 만나고 한 달 뒤인 11월 김경득은 최고재판소에 청원서를 낸다.

"돌이켜보면 제가 해야 할 일은 차별을 없애는 것이지, 일본인을 가장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저처럼 자신의 민족에게 등을 돌려온 인간도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잃게 하는 일본국 귀화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해 12월 아사히신문에 김경득의 이야기가 실린다. 와세다대에서 아르바이트로 청소하는 그의 사진도 함께 실렸다.

일본 법조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반향을 일으킨다.

청원서를 내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김경득은 이듬해인 1977년 1월 고향 와카야마로 내려간다.

엄격한 최고재판소가 김경득을 입소시켜줄 리 없었다. 그렇게 가망이 없다고 여기던 3월 그는 사법수습생에 채용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사건은 김경득의 인생은 물론, 일본 사회의 차별, 재일동포의 운명을 한꺼번에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