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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작가의 글 <일본제국 vs. 자이니치> 서문

by 북콤마 2015. 8. 11.



** 저자는 맨 나중에, 본문을 직접 교정한 뒤 '작가의 글'을 적었습니다. 더 이상 손댈 것 없는 원고를 확인한 뒤 떠오르는 원고의 모습을 잡아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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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

일본제국의 식민 지배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1945년 무렵 200만 명에 이릅니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많은 사람이 귀국하지만 60만 명이 돌아오지 못하고 남겨집니다. 이렇게 일본의 식민지를 계기로 일본에 살게 된 조선인과 후손이 자이니치在日이며 100만 명에 달합니다. 일본 전체 인구의 1퍼센트입니다.

자이니치의 일본 거주가 올해로 70, 식민지 35년의 두 배가 됐습니다. 일본에서 독립한 조선은 그 사이에 남북으로 나뉘고, 3년간 전쟁을 벌이고, 독재 정권에 고통을 받으며, 먹고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동안 자이니치는 일본에서 더욱 혹독하고 잔인한 차별을 견디며 살아야 했습니다.

일본은 조선인의 일본국적을 박탈한 뒤 모든 기본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가령 1961년 만들어진 의료보험과 연금이 국민의료보험국민연금입니다. ‘국민에 대한 일본의 집착은 강고했습니다. 일본인이 아니라서 집을 빌리지도 못했고, 취직할 수도, 공무원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도저히 먹고살기가 힘들 때 북조선이 조국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자이니치의 98퍼센트가 남쪽 출신인데도 10만 명이 이주했습니다. 한국은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하며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남은 이들은 생존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습니다. 가짜 일본이름만 썼고 우리말은 못 하게 됐습니다.

일본의 이러한 태도를 그대로 따라한 곳이 한국입니다. 식민지를 거치면서 일본이 만든 내셔널리즘을 학습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헌법의 주어가 인민people’이지만, 한국은 일본과 똑같이 국민입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초안은 모두 인민이었습니다. ‘국민으로 바꾸어 인권의 조건으로 국적을 요구했습니다.

*사진: 이범준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는 내셔널리즘의 바닥에서 고통받아온 자이니치의 역사입니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3년에 걸쳐 기획·제작했습니다. 2012~2013년 전 세계의 문서와 영상을 확보해 검토했고, 2013~2014년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국을 취재했습니다. 2014~2015년 증언과 취재를 확인해 기록을 마쳤습니다.

취재를 위해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유난히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숨이 막히도록 뜨거운 오사카의 여름을 보내면서 자이니치들의 고단한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말라 죽지 않고 살아남은 그들의 삶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고 거듭 다짐했습니다.

어깨를 짓눌러온 그 무거운 짐을 이제 내려놓습니다. 저의 실력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프로젝트였음을 고백합니다. 서울에서 보내는 이 기록이 그들의 아프고 외로웠던 지난날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우나 고우나 자이니치들을 도와온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일본인임을 알고 있습니다.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서울, 이천십오년 여름 

이범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