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노동자로 일하다 사고로 숨진 고 김용균의 1주기입니다.
사진은 매일노동뉴스 기자인 저자가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를 찍은 것입니다.저 실루엣은 '보는 이의 시선을 붙드는, 인상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저자는 어떻게 해서 실루엣을 찍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조명 장비를 챙겨 갔지만 어머니 앞에서 꺼낼 생각을 접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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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나오는 글 '엄마의 숙제'를 잠시 읽어보시죠
<소심한 사진의 쓸모>(정기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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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였다. 얼마전 자식 앞세운 사람에게 그 죽음을 다시 묻는 일이었다. 다행인지, 질문하는 건 나의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 뒤에 숨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나는 거기서 생각했다. 카메라를 좀 늦게 들었다. 조명장비를 얼마간 챙겨 갔는데 꺼낼 생각을 접었다. 그저 바라보고 듣는 일을 한참 했다. 동기화라고 해야 할까, 감정을 끌어올리거나 낮추는 과정이었다. 감정이 넘쳐서도, 부족해서도 안될거라고 생각했다. 예의를 갖추는 일이라도 여겼다. 보자마자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건, 조명 세워 팡팡 터트리는 건 폭력적인 일이라고 느꼈다. 노력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 나는 자주 울컥했다. 카메라 뒤로 숨었다.
앞모습 사진을 골라 인터뷰 사진을 따로 마감했다. 마냥 슬퍼 보이는 모습은 피했다. 이런저런 과제를 말하는 엄마의 의지를 드러내는 사진이었으면 좋겠다고 당시에 생각했다.임시 거처 삼아 지내던 비정규노동자의집 한쪽 벽엔 이런저런 선전물이 많이 붙었는데, 그게 다 숙제 같았다. 배경 삼아 실루엣 처리했다. 얼굴을 감싸쥐거나 눈물을 닦던 장면이 메시지가 명확할 것 같아 여러장을 찍었는데, 나중엔 먼데 바라보는 시선이 그 앞 온갖 숙제 같은 문구로 향하기를 기다렸다. 매순간 주저한건 나였다. 그날 용균이 엄마는 자신의 슬픔에 대해 길게 말하지 않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말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만큼 자주 웃었다. 자꾸만 붉어지고 그렁그렁 물 고여 반짝거리던 눈을 보고서야 그 속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 정기훈.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
네이버 책: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768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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