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들의 원기둥
인터뷰를 진행한 미팅룸은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알록달록 색상의 파일들이 원기둥 형태로 빼곡히 차 있었다. 회원들의 자료 파일이라고 했다. 빨간색은 한때 회원이었으나 지금은 아닌 사람들의 파일이고, 초록색은 현재 회원들의 파일, 그리고 분홍색은 디그니타스를 통해 조력자살을 한 사람들의 서류였다.
15년, 20년씩 만성 질환을 앓았던 사람들이 그동안의 모든 의료 기록들을 보내오기 때문에 파일이 더 두꺼워진다는 것이다.
__“처음에는 파일이 아주 얇다. 그러다 조력자살을 신청하면 우리가 많은 질문을 보내고, 거기에 답변과 자료가 오면서 점점 두꺼워진다. 맨 마지막에는 박스 두세 개가 나오기도 한다.”
조력자살을 위한 극약 처방전을 써주는 의사는 어떻게 찾는가.
스위스 의사의 60퍼센트 정도가 조력자살에 동의한다. 의사 개인마다 의견 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조력자살에 동의하므로 의사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조력자살 요청이 매우 까다로운 경우가 있다. 예컨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조력자살을 하려고 할 때, 여기에 동의하는 정신과 의사를 찾는 건 어렵다. 만성 복합 질환을 앓는 경우도 쉽지 않다. 의사 입장에서 조력자살을 돕는 일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서류를 검토한 뒤에야 처방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신청이 들어오고 언어도 다 다를 텐데.
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독일어(스위스에서 통용되는 언어) 문서는 우리가 다 다룰 수 있다. 신청자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영어나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도 할 수 없는 경우엔 우리가 조력자살을 돕기 어렵다. 우리가 당사자의 감정과 원하는 바를 이해하고, 당사자 역시 우리가 절차와 과정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스위스에서는 조력자살은 허용하지만, 의사가 직접 치명적인 약을 환자에게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는다. 적극적 안락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보나.
안락사를 뜻하는 ‘euthanasia’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로 ‘편안한 죽음’에서 유래한다. 죽음의 방식과는 관련이 없다. 환자의 요청으로 의사가 생명을 끊는 방식의 적극적 안락사를 할지, 조력자살을 허용할지, 혹은 소극적 안락사만 허용할지는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에 토대를 둔다고 생각한다.
스위스에선 개인의 자율과 개성, 책임감을 중요히 여긴다. 조력자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든 과정을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 있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뜻을 지지해달라고 할 수는 있지만, 실제 행동은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조력자살을 위한) 약을 대신 먹여달라거나 의사한테 주사기를 눌러달라고 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조력자살이 허용되면 경제적으로 치료를 받을 만한 돈이 없는 사람들이 사실상 자살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조력자살이나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모든 국민이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공공 의료 시스템과 통증 완화의료 제도도 동시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치료를 받을 돈이 없거나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조력자살을 선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현재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들은 모두 이런 공공 의료 시스템이나 완화의료 제도가 매우 잘 갖춰져 있다.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한 한국인이 2016년과 2018년에 각각 1명씩 있었다.”__디그니타스조력자살을 위해 스위스로 간 한국인을 찾아서책은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감행한 한국인 2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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