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간도서/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잔여적 복지 체제 문제점 '수급자는 국가가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by 북콤마 2014. 4. 17.

 

사회복지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자세히 살펴볼 생각입니다

'복지사각지대 특별조사' 과연 실효가 있는지...

양만재 소장께서 현행 복지 체계의 문제점을 소상히 밝히고 있네요

잔여적(선별적) 복지/보편적 복지, 사회복지사의 박애주의적 시선, 푸코가 말하는 통치성 기술,

--------------------------------

'복지 경찰' 방식으론, 또 다른 '세 모녀 자살' 못 막아

수급 탈락자 자살 부르는 징벌조사도 개선해야

프레시안. 2014.04.16

 양만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포항지역복지연구소장 |

 

현실을 진단하기 위해 우리는 상황에 따라 망원경, 현미경, 투시경을 필요로 한다. 사회복지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화나 국가 정책 수준에서 사회 복지를 진단·분석하기 위해서는 망원경이 필요하다. 지역 사회와 가족 수준에서는 현미경이 필요하고, 개인 수준에서 가치와 심리를 이해하는 데는 투시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세 가지 분석도구를 함께 동원하는 방법을 학습하고 훈련한다. 하지만 이런 능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특별조사'로 복지 소외 계층 집중 점검?

'복지'라는 단어가 붙은 두 조사가 최근 지역에서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다. 전자는 '복지사각지대 특별조사'이고, 후자는 '2014년 지역복지 수요조사'. 복지사각지대 특별조사는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가 추진했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난 3월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지역복지 수요조사는 지방자치단체가 앞으로 4년간의 복지 수요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관련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추진했다.

복지사각지대 특별조사를 추진한 배경은 간단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발생한 세 모녀 자살 사건의 파장이 컸기 때문이다. 세 모녀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열심히 살았음에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말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는 정부 복지 정책의 실효성을 되돌아보게 했고, 국민에게는 불우한 이웃을 외면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정부가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조사하고 대책을 수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 '특별'조사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도 모른다.

이번 특별조사는 2년 전 조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20114, 서울방송(SBS)<그것이 알고 싶다>가 공원 화장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사연을 다룬 적이 있었다. 이때 보건복지부 주도로 지방자치단체가 한 달여 동안 실태 조사를 했고, 23000여 명을 발굴하여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도 정부는 '특별조사'를 통해 집중적인 점검을 하고, 공공·민간 자원을 활용하여 소외 계층을 적극 지원하라는 공문을 일선 행정 현장으로 전달했다.

'반짝 지원'만으로는 비극 못 막아

지방자치단체들은 '복지사각지대 발굴추진단'을 구성했다. 3주에 걸쳐 읍··동은 복지 소외 계층과 실직, 질병, 노령 등으로 경제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가구를 발굴했다. 현장에서 5~6년 경력이 있는 일선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이런 일이 생소하지 않다. 3년 전에 이미 경험한 일이었고, 찾아나서 직접 발굴하기보다 전화로 확인하거나 수급 기준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명단에 올리면 되는 일이다. 현수막을 보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있고, ·반장이 명단을 제출하기도 한다. 결국, 일선 사회복지사의 시선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deserving people)'불가능한 사람'(undeserving people)이 정해진다.

사회복지학에서 쓰는 전문 용어로 풀이하면, 사회복지사가 복지 혜택의 자격 박탈 여부를 주어진 규제에 따라 결정하는 것을 두고 '박애주의적 시선(philanthropic gaze)의 활동'이라고 한다. 후기 구조주의 학자 푸코(Foucault)의 언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유자격과 무자격에 대한 분류를 규제 과정에 뿌리를 두고 통제한다는 뜻에서 '통치성 기술(technologies of governmentality)의 수행'이라고 한다. , 일선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복지조사를 통해 국가가 정한 기준에 순종하도록 유도하는 '통치성 기술'을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특별조사와 점검 과정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명단이 접수된다. 여기서 다시 사정(평가) 작업을 거쳐 사람들을 선별한다. 선택된 사람들은 지원 범주에 따라 지원 등급을 부여받는다. 사회복지 공무원들에게는 조사된 자료를 토대로 신청자와 대화하고 진단·분류하는 작업이 더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제한된 시간 내에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에 실적을 입력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물론 특별조사가 긍정적인 기능도 한다. 내가 사는 포항시는 751명을 선정하여 74명은 기초수급자로, 36명은 차상위수급자로, 30여명은 긴급지원 대상자로, 8명은 통합사례관리 대상자로, 4명은 공동모금회 지원 대상자로, 349세대는 민간후원 지원 대상자로 결정하여 지원했다. 전국 단위의 지원 대상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2011년에 23000명이 지원받은 점을 고려하면, 이번 특별조사에서도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지원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2011년에 그만한 인원을 지원했는데 3년 뒤 비극이 되풀이된 셈이다. 그래서 언론들은 이런 특별조사가 "반짝 지원을 위한 조사"라고 조롱하고 있다.

부정 수급자 색출하는 '복지 경찰'?

수혜 대상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발굴조사'도 있지만, 수급자 자격을 박탈하려는 '징벌조사'도 있다. 2011년 보건복지부는 '부양의무자 확인조사'를 통해 소득이 있는 수급자 가족을 파악해 수급 중지를 통보했다. 그 결과, 사위의 소득 증대로 자격을 박탈당한 수급자가 농약을 먹고 자살하거나, 딸의 소득이 확인되어 수급자가 목을 매는 사건 등이 일어났다.

조사의 명분은 정부가 수급자에게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부정 수급자를 발굴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필요한 조사일 수 있다. 그러나 수급자 편에서 보면 자격 박탈의 위협을 주는 조사다. 수급 탈락을 통보받은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유도하기도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언주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복음)이 개통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201987명이 '수급 중지' 통보를 받았다. 부정 수급 조사 등을 통해 탈락된 수급자가 연 평균 5만 명 수준이다. 사회복지 공무원이 '복지 경찰' 혹은 '징벌자'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정부는 부정 수급자를 솎아내는 징벌조사를 통해 사회복지 공무원이 박애주의적 시각에서 잔여적 복지를 실천하도록 유도한다. 수급자는 국가가 마치 자비를 베푸는 것 같이 여기게 된다.

박애주의적 실천과 잔여적 복지를 위한 사회복지조사가 강화될수록 부작용은 커질 수 있다. 빈곤층과 클라이언트는 자립 역량을 강화하는 데 열정을 쏟기보다는 복지 급여를 받기 위한 조건에 더욱 관심을 두고 행동할 수 있다. 능동적 존재가 아닌 복지 급여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 사회복지 공무원이 제시하는 조건에 맞추어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조사를 수행하는 사회복지 공무원들도 서럽기는 마찬가지다. 발굴조사든 징벌조사이든, 제대로 조사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행정 업무를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 전문적인 복지 업무에는 하루 40여 분 정도만 주어진다. 업무가 과중하여 자살하는 복지 공무원도 계속 나오고 있다. 발굴조사는 그런대로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징벌조사는 자아 정체성의 상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사회복지사나 사회복지 공무원은 클라이언트의 권리를 보호하고 욕구를 충족하도록 도움을 주는 전문가라고 배웠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수동적 클라이언트를 양산하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부정 수급자를 많이 적발할수록 일 잘하는 복지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업무 재량권도 예산 범위 내서만 쓸 수 있다. 감독관청이 두렵다. 그래서 전문성을 발휘할 자율성은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보편적 복지체제로 전환이 중요한 이유

잔여(선별)적 복지체제에서 보편적 복지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복지 공무원의 정체성 상실을 유도하고, 복지 소외 계층을 자살하게끔 유도하거나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징벌조사 방법론도 의도치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만큼 바꿔야 한다. 정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징벌조사를 수급자 복지 지원 체제 개선을 위한 '변혁적 조사'로 전환해야 한다. 또 조사 결과에 따라 수급 탈락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사회 정의와 인권의 가치와 원칙이 결부된 복지 조사를 해야 한다.

전문가 중심으로 시행하는 복지조사 계획 수립·집행·평가 체제도 바꿔야 한다. 정책 집행자와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서비스 이용자를 참여시키고 이용자의 역량을 강화하며, 사회 정의와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조사방법론에 익숙하지 않다. 조사자 중심으로 질문지를 작성하고 질문지에 제시된 문항을 선택하는 실증주의 방법론을 주로 배웠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복지 이용자와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조사방법'(collaborative research)을 점차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사회복지조사는 일반인이 아닌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수행하는 조사다. 여타 조사와 달리 조사 윤리를 특별히 강조해야 한다. 사회복지 전문가는 사회복지조사가 약자의 권리와 사회 정의를 얼마나 신장하고 실현하는지 분석해야 한다. 또한 이를 변혁할 수 있는 망원경, 현미경, 투시경의 관점과 지식을 겸비하고 있는지 늘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