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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소심한 사진의 쓸모

<소심한 사진의 쓸모> 1미터: 절 받아라, 용균아

by 북콤마 2019. 11. 26.


머리 허연 노인이 새카맣게 어린 모습 영정 앞에서 이제는 늙어 고장 난 몸을 힘겹게 접었다. 영정을 똑바로 보지 못하던 엄마가 그를 부축했다. “용균아, 절 받아라!” 호통 치듯 외치던 그의 눈이 붉었다. 주름 깊었다. 꽃다운 청춘이었다고 빈소 찾은 사람들이 포스트잇에 적었다. 스물넷 청년의 노동과 목숨을 연료 삼아 발전소는 돈다고 기자회견 자리에서 원로는 말했다. 컨베이어벨트는 멈추지 않았다. 진상 규명이 멀었다. 사람이 먼저가 맞느냐고 산 사람들이 물었다. 촛불을 되물었다. 가만 듣던 엄마가 울었다. 시신을 꺼내어 그 참혹한 죽음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선생은 못할 말을 애써 꺼냈다. 죽음을 막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엄마가 답했다. 밤낮없이 불 밝힌 빈소에 꽃향기가 가득하다. 촛불이 타들어간다.

엄마의 손은 백기완 선생의 팔을 붙들고 있다. 영정을 바라보던 눈은 돌아 나오면서 바닥을 향했다. 2019년 1월 빈소엔 꽃이 많았다. 조명이 많아 밝았다. 바닥은 매끈했다. 백기완 선생은 이제 늙어 아프다. 우뚝 서 큰 소리 치던 모습은 옛일이다. 부축 받고서야 움직인다. 기자회견 앞자리에선 자꾸 눕는다. 뭐랄 수도 없는 사람들이 안타까운 눈으로 살폈다. 목소리만큼은 정정한 편인데, 특유의 유머는 줄었다. 한때 ‘조선의 3대 구라’로 통했던 호방한 이야기꾼이었다.

늙어 초라한 걸음과 몸짓을 찍는 일은 조심스러웠다. 빈소에서 절할 땐 사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돌아 나오는 길에 일그러진 표정과 김용균의 영정을 함께 담으려 뒷걸음질 쳤다. 신발장 턱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맨발로 나머지 상황을 따라갔다. 흔한 일이다. “용균아, 절 받아라!” 외치고 몸 구부리던 노인의 모습을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일터에서 죽는 일이 그저 흔했다. 참담한 일이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자고 벌인 토론회와 집회 맨 앞자리에서 용균이 엄마를 자주 볼 수 있다. 여태 운다. 나는 또 그 눈물을 담겠다고 앞에 쭈그린 채 허둥댄다. 절 받아라, 용균아. 18

사진 정기훈. 고 김용균의 빈소를 찾은 백기완 선생

네이버 책: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768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