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우중충한 빛깔의 책은 오늘 인쇄 공장에서 나온 새것이다. 지은이가 정기훈이니 나는 각별한 애정을 품고 기념사진 한 장을 남긴다. 요 며칠 된바람에 날려 떨어진 노랗고 붉은 빛 나뭇잎을 배경 삼아봤다. 그러고 보니 저 표지의 색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디자이너와 만난 적은 없어 나는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짐작할 따름이다. 거리를 오가며 비슷한 색깔이 무엇일까 살펴봤다. 편의점 앞에 쌓아둔 우유 담는 플라스틱 상자가, 배달대행 노동자 오토바이 짐 상자가 먼저 눈에 들었다. 헌옷 수거함이, 또 화물차 짐칸 덮는 그물망이 엇비슷했다. 가만 보니 실밥 터져 구멍난 내 겨울 점퍼 색과도 묘하게 섞인다. 오르막길 옆 제설함 통 색깔이 그랬고, 지하철 역사 한쪽 자동심장충격기 안내 문구가 그랬다. 도로 표지판 바탕과 어느 벽에 붙은 청테이프 조각도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길에 앉아 구호 외치던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의 조끼와 모자 색깔이 무엇보다도 비슷한 것 같다고 나는 느꼈다. 저마다의 분명한 쓸모를 가진 것들이었다. 저기 떨어져 뒹구는 나뭇잎도 곧 썩어 흙에 거름 될 테니, 나는 다시금 저 묘하게 우중충한 빛깔의 책 한 권이 어떤 쓸모를 지닐까를 고민한다. 잘 모르겠다. 저 표지의 색이 무언지도, 꾸역꾸역 적고 찍어온 그 안 성긴 글과 사진의 쓸모가 어떤 건지도. 그러니 나는 색맹이고 숙맥이다. 종종 응원해주던 사람이 있어 용기를 내봤다. 부끄럼 많은 내가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 풍경을 엮어봤다. 저기 배경 삼은 낙엽만큼의 쓸모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__정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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