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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실명의이유

"색깔은 사라졌고, 흑백만 남았다" <실명의 이유>

by 북콤마 2018. 5. 7.


청년 6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오던 날

전정훈

"정훈씨는 2016년 1월 16일을 잊지 못한다. 토요일, 회사가 이전하는 날이었다. 정훈씨도 불려 나왔다. 앞서 일주일 동안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날은 그 증상이 더욱 심했다. 낮 12시 몸살이 난 것처럼 으슬으슬 추웠고, 세상이 희미하게 보였다.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용기를 내서 조퇴했다. 집으로 가는 길, 신호등 색깔도 버스 번호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버스나 탔다. 중간에 내려 한참을 걸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정훈씨는 오후 3시께 집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로 동생에게 발견됐다. 바로 응급실로 옮겨졌다. 9년 전 아버지가 실려 간 바로 그 병원이었다."

이현순: 

" 2016년 1월 15일 오후 7시, 현순씨는 속이 울렁거려 토를 했다. 머리도 아팠다. 출근을 2시간 앞둔 때였다. 출근 도장을 찍은 후 병원에 갔다. 피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현순씨 몸에 링거를 꽂았다. 그녀는 2시간가량 수액을 맞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와 일했다.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흐려지고 얼떨떨했다. 눈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9시 밤샘 근무를 마친 후 집으로 향했다. 바로 잠들었다. 오후 2시께 일어났다.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화장실에도 못 갔다. 현순씨는 곧바로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방동근: 

"그로부터 닷새 뒤 동근씨에게도 현순씨가 겪은 증세가 똑같이 나타났다. 1월 20일 오전 9시 밤샘 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길, 그날따라 머리가 아팠다. 감기 증상처럼 느껴졌다.

집에 와서 감기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출근을 2시간 앞둔 오후 7시 30분에 눈을 떴다. 어지럽고 눈이 아팠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색깔은 사라졌고 , 흑백만 남았다. 사물의 윤곽은 흐릿했다.

약국에 다녀온 뒤 다시 잠을 잤다. 밤 9시 출근 시각을 훌쩍 넘긴 자정에 눈을 떴다. 흑백 세상은 그대로였다. 아까보다 더 나빠진 것 같았다. 그는 심상치 않은 상황을 직감했다. 같이 살고 있던 여자친구는 그를 택시에 태워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김영신: 

"일한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을 때, 감기 기운이 있는지 피곤함이 몰려왔고 눈이 뻑뻑했다. 밤샘 근무를 하는데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형광등의 밝은 빛을 이용해 제품 검사하는 업무를 이틀가량 했다. 

며칠 뒤인 2월 1일 오후 9시에 출근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 눈이 아프고 형광등이 뿌옇게 보이거나 잘 안 보였다. 감기 기운도 있는 것 같았다. 관리자에게 말하고 조퇴한 뒤 집에서 쉬었다. 

이튿날 점심쯤 일어났더니, 스마트폰 화면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영신씨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갔다."

전정훈씨. 사진 민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