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 이상범죄

신 이상범죄 6: '강력 성범죄 전조' 속옷 상습절도

by 북콤마 2021. 5. 24.

시놉시스

2019년 9월 4일 자정, A(26)씨는 의정부 주택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30분여 동네를 한 바퀴 돈 A씨는 야식 배달기사가 공동 현관문을 통해 오피스텔에 진입하는 걸 보고 잽싸게 따라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5층 옥상에 도착한 A씨의 눈에 빨래 건조대가 들어왔다. A씨는 주변을 잠시 살피더니 속옷들을 가져온 백팩에 쑤셔넣고 부리나케 건물을 빠져나왔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주변 CCTV를 통해 A씨 소행을 파악하고 그를 검거했다. 경찰이 A씨의 집을 뒤졌더니 상의 6벌과 원피스 3벌, 브래지어 14점과 팬티 39점, 브래지어 패드 10점 등 총 72개 130만 원 상당의 여성 의류가 발견됐다.

 

A씨의 절도 행각은 그해 3월 시작됐다. A씨는 출입이 어려운 아파트 대신 빌라나 오피스텔이 몰려있는 주택가를 노렸다. 공터나 옥상에 놓인 건조대가 주요 타깃이었다. A씨는 2017년에도 마트에서 여성 속옷을 훔쳐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적 있었는데, A씨는 이 전과에 대해 "무직 상태로 지내다가 호기심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의정부지방법원은 2020년 7월 야간주거침입절도 및 절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성도착증으로 입원 치료 중이고 앞으로도 꾸준히 치료받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며 "피고인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고인을 선도하겠다며 선처를 탄원한 점도 고려했다"고 실형을 유예한 이유를 밝혔다.

 

CCTV 증가와 과학수사 기법 발달에 쫓겨 금품을 노린 범죄는 대거 사이버상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하지만 여성 속옷을 노린 절도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은밀한 범죄'의 상당수는 상습범 소행이다. 현행법상으로는 단순 절도여서 여간해선 엄벌을 받지 않지만, 성범죄를 비롯한 강력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수사당국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속옷 상습절도는 성(性)과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보통의 강박장애성 범행과 구별된다. 속옷에 대한 집착은 성도착증(페티시즘)의 일종인 '물품음란증'과 관련 있다는 분석도 많다. 물품음란증은 성적 대상을 상정하며 무생물인 물건에 흥분을 느끼고 집착하는 경우를 뜻한다. 성적 욕구를 비정상적으로 충족하는 행위인 셈이다.

 

경찰청이 발간한 범죄행동분석연구 창간호에 실린 '물품음란증에 대한 이론적·경험적 고찰'에 따르면 성적 살인으로 검거된 피의자의 40%가량은 주거침입절도 전과가 있고 이런 전과 대부분은 페티시즘이나 관음증에서 시작됐다. 그럼에도 현행법은 속옷 도둑을 절도범으로만 취급해 범행 예방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성범죄와 유사한 특성이 있는데도 법적으로는 주거 침입이나 단순 절도로만 처벌할 수 있어 비교적 가벼운 처벌에 그칠 때가 많다. 속옷 절도범에게는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도 내릴 수 없다. 해외에선 치료가 필요한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에선 아직까지 단순한 '도벽'으로 치부되는 탓이다.

 

비뚤어진 충동 사로잡혀…여성 속옷만 노리는 도둑들

[新 이상범죄]

www.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