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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메이저리그 전설들 1

우연들 1: 메이저리그 데뷔와 이적, 은퇴에 얽힌 스토리. <메이저리그 전설들 1,2>

by 북콤마 2022. 4. 28.

1. 스즈키 이치로: 1994년 데뷔

__1991년 11월, 이치로는 드래프트 41순위로 오릭스 블루웨이브(현 버팔로스)의 지명을 받았다. 많은 팀이 이치로의 왜소한 체구를 꺼려했다. 내심 고향 팀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고 싶었던 이치로는 실망했다.

__전환점을 맞이한 건 1994년이었다. 오기 아키라 감독이 오릭스에 부임하면서 이치로에게 힘을 실어줬다. 다들 이치로의 타격 폼이 특이하다고 했지만, 오기는 그의 타격 폼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절대 이치로에게 기술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1번 타자로 기용하며 그가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도록 지원했다.

__1994년 이치로는 210안타를 쳐내 일본 프로야구 최다 안타 신기록을 수립했다. 그해 이치로의 타율은 무려 0.385였다. 그해 리그 MVP를 수상한 이치로는 이후 3년 연속으로 MVP를 차지했다.

__2000년 이치로는 7년 연속으로 타율 1위를 휩쓸었다. 일본 야구사에 없었던 대기록이었다. 그해 이치로는 1994년을 뛰어넘는 타율 0.387를 기록했다.

 

2. 블라디미르 게레로: 2004년 이적

__2000년대 초 게레로의 주가가 날이 갈수록 치솟을 때 몬트리올은 야구 도시로서의 지위를 잃어갔다. 매년 하위권을 맴돌면서 흥행 몰이에도 실패했다. 그러자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는 몬트리올을 정리하고 플로리다 말린스를 인수했다.

__8년간의 몬트리올 생활을 끝낸 게레로는 2003년 겨울 FA 시장에 나왔다. 여러 팀이 접촉한 가운데 승자는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였다.

__2004년 게레로는 단숨에 아메리칸리그를 제패했다. 타율 0.337를 기록하며 39홈런과 126타점을 쓸어 담았다. 206안타, 124득점은 리그 1위였다. 타율 0.330과 더불어 200안타 30홈런 120타점 120득점을 모두 이뤄낸 아메리칸리그 타자는 1996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있었다. 그리고 2004년 게레로 이후 이 기록을 달성한 아메리칸리그 타자는 없다.

__2004년 리그 MVP는 게레로였다. 리그를 이동한 선수가 곧바로 MVP를 따낸 경우는 게레로가 5번째였다(1966년 프랭크 로빈슨, 1972년 딕 앨런, 1984년 윌리 에르난데스, 1988년 커크 깁슨).

 

3. 치퍼 존스: 1990년 드래프트

__고교 시절 치퍼 존스의 목표는 드래프트 전체 1순위였다. 하지만 존스가 나온 1990년 드래프트에서 압도적인 1순위 후보는 따로 있었다. 텍사스주 출신의 우완 파이어볼러 토드 반 포펠이었다. 드래프트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등장한다며 떠들썩했다.

__당시 1순위 지명권은 양 리그 최하위 팀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나눠 가졌다. 전년도 1989년 전체 최하위는 디트로이트였다. 그러니 1990년은 내셔널리그 최하위 팀인 애틀랜타가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할 차례였다.

__애틀랜타는 당연히 토드 반 포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별 따기였다. 반 포펠의 계약을 주관하는 에이전트는 스콧 보라스였다. 반 포펠을 붙잡으려면 엄청난 계약금이 필요했다.

__반 포펠에게 거절당한 애틀랜타는 서둘러 플랜 B를 찾아 나섰다. 치퍼 존스였다. 바비 콕스 단장은 실무진과 동행해 존스가 있는 플로리다주 잭슨빌을 방문했다. 당초 애틀랜타가 반 포펠에게 주려고 했던 돈은 100만 달러였다. 존스는 이 금액의 절반도 되지 않는 27만 5000달러를 받았다.

 

4. 켄 그리피 주니어: 1995년 시애틀

__1995년 다이빙 캐치를 하다 손목 골절상을 입어 시즌의 절반을 날리는 첫 시련을 경험했다. 하지만 1995년은 그리피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시즌이기도 했다.

__부상에서 석 달 만에 돌아온 그리피는 8월 25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9회 말 2사에서 역전 끝내기 홈런을 날렸는데, 이는 시애틀 질주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지구 1위인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11경기 반 뒤져 있던 시애틀 매리너스는 이후 미친 듯이 내달렸다.

__2경기 차로 다가선 9월 19일, 그리피는 다시 11회 말 끝내기 홈런을 날렸다. 그리고 다음 날 시애틀은 공동 선두가 됐다. 그리피는 이 홈런을 시작으로 8경기에서 타율 0.406 5홈런 15타점을 몰아 쳤고, 결국 시애틀은 1경기 플레이오프 끝에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__시애틀과 그리피의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디비전시리즈 최종 5차전에서 역전하면서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한다. 그즈음 시애틀은 주 정부로부터 새 구장 건설에 대한 재정 지원을 거부당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해 감동적인 포스트시즌 시리즈 이후 주 정부는 태도를 바꿨다. 양키스타디움이 ‘(베이브) 루스가 지은 집’이었다면 시애틀의 새 구장 세이프코 필드는 ‘그리피가 지은 집’이나 다름없었다.

 

5. 크레이그 비지오: 1992년 포지션 변경

__비지오의 포수 수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도루저지율이 현저히 떨어졌다. 비지오의 송구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__1992년 결국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비지오를 2루수로 전환시켰다. 비지오는 1992년 갑자기 마스크를 벗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에게 새로 주어진 임무는 2루수였다.

__비지오는 탁구 라켓을 들고 연습을 하는 등 2루수가 되기 위해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했다. 그리고 결실을 이뤘다. 로베르토 알로마 같은 타고난 천재성은 없었지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마침내 2루수로서 골드글러브를 손에 쥐었다.

__2루수가 된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2루수로 전환하고 2년차인 1993년 21개 홈런을 때려냈다. 1994년에는 첫 4할 출루율을 기록했다. 44개 2루타와 39도루는 리그 1위 기록이었다.

__진정한 변화는 1995년에 일어났다. 겨우내 타격 폼을 바꾸는 데 전력을 쏟은 비지오는 1995년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웅크린 채 타격하는 모습으로 스프링캠프에 나타났다.

__투수들은 비지오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았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1년간 연평균 22번의 고통을 참아낸 비지오는 결국 통산 285개 몸 맞는 공에 달해 20세기 최고 기록을 세웠다. 메이저리그 통산 최고 기록은 19세기에 데뷔한 휴이 제닝스가 갖고 있는 287개다.

 

메이저리그 전설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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