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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33년만의 진범

이춘재의 자백 과정, 프로파일러 면담: <33년만의 진범>

by 북콤마 2020. 8. 18.


이춘재의 자백은 어떻게 보면 시간문제였다. 현재 DNA 분석 기법에서 오류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토록 빨리, 일주일이라는 시간 만에 자백이 나올 줄은 몰랐다. 자백 사실과 자백 내용이 한꺼번에 나왔는데 충격적이었다. ‘14건 살인, 30여 건 강간 및 미수’라는 구체적임 범행 건수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화성 연쇄살인을 뛰어넘고 있었다. 놀랄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8차 사건도 내 소행’이라고 했을 때 이번에는 경찰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엉뚱한 사람이 감옥살이를 한 것이 돼버리는 상황도 난감했지만 과거 경찰의 강압 수사에 대한 의혹이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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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2019년 9월 18일 이후) 프로파일러들은 휴일도 반납한 채 지속적으로 이춘재와 접촉하고 공감대 형성 작업에 집중해왔다. 수사본부는 이씨를 외부 상황과 차단시킨 뒤 접견 조사에 베테랑 프로파일러들을 투입했다. 이춘재가 머무는 교도소 독거실엔 TV가 연결되지 않았고 신문도 관련 기사는 검열을 거쳐 삭제된 상태로만 볼 수 있었다.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경찰 수사의 진전이나 여론 추이 등의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오직 면담하는 프로파일러들과의 대화만이 창구가 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소속 3명에다 전국에서 차출된 프로파일러 6명까지 추가 투입됐는데 이들 중에는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당시 심리분석 작업을 맡아 자백을 이끌어냈던 공은경 경위도 포함됐다. 프로파일러로서는 추가로 의뢰한 DNA 감식의 결과를 기다리며 이춘재와 꾸준히 접촉해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데 집중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다.

이 무렵 7차 사건 당시 용의자와 마주쳐 몽타주 작성에 참여했던 버스 안내양 엄 모 씨가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나와 법최면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이춘재의 사진을 보여주자 엄씨는 ‘기억 속의 용의자가 이 사람이 맞다. 당시 목격한 용의자의 얼굴과 일치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접견 조사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씨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씨는 9월 24일∼27일에 이뤄진 4∼7차 대면 조사에서 처음 입을 열었다. 그전까지는 프로파일러의 질문에 대체로 답을 하지 않고 화성 연쇄살인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이때 이춘재는 한 여성 프로파일러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불쑥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손이 참 예쁘시네요. 손 좀 잡아봐도 돼요?”

이에 프로파일러는 매몰차게 대하지 않고 “조사가 마무리되면 악수나 하자”고 편한 톤으로 대답했다. 이씨의 요구를 완곡히 거절하면서도 라포르(정서적 친밀감과 신뢰)를 깨뜨리지 않아야 했다.

이러한 친밀감을 유지한 끝에 자백을 끌어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갈등하던 이춘재는 순간 “DNA가 나왔다니 어쩔 수 없네요”라고 하더니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자백을 시작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모범수 자격으로 가석방을 노려볼 가능성이 사라진 마당에 프로파일러들의 회유와 압박이 더해지자 이춘재는 모든 범행을 자백하기로 마음을 굳혔을 것이다. 경찰이 DNA를 재분석해 이씨를 5차, 7차, 9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 지 13일 만이다.

네이버 책 소개: <33년만의 진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96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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