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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33년만의 진범

현재 진행 중인 재심(형사사건)

by 북콤마 2020. 8. 14.

 

1. 낙동강변 엄궁동 살인 사건

장동익씨와 최인철씨는 1990년 1월 4일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밭에서 발생한 일명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1년여를 감옥에서 지냈다. 당시 경찰은 이 두 사람이 낙동강변에서 차량 데이트를 즐기던 한 커플을 납치해 여성은 강간·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하고, 남성에게는 상해를 입힌 것으로 결론 내렸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범인을 붙잡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처리했다. 1년 10개월 후인 1991년 11월 두 사람은 다른 사건에 휘말려 부산사하경찰서에서 조사받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조사 과정에서 범행을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후 경찰 수사 과정에서 물고문과 폭행을 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들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도 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줄곧 주장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결국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감옥에서 모범수로 생활하다 2003년 특별 감형을 받고 복역한 지 21년여가 지난 2013년에 출소했다.

2016년에 재심을 청구했고, 2020년 1월 6일 부산고등법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이 세간의 이목을 끈 이유 중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를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경찰이 두 사람을 범인으로 특정한 데는 특히 살해된 여성과 함께 있다가 도망친 피해 남성 A씨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A씨는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봤다는 범인들의 인상착의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몽타주조차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사건 1년 10개월 후 장씨와 최씨가 붙잡혀 오자 그제야 A씨는 “범인 중 한 사람은 덩치가 컸고 다른 사람은 키가 작았다”는 등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A씨의 진술은 초동수사 때와 이후를 비교하면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했지만 경찰은 피해자이자 목격자라는 그의 말만 믿었다. 특히 A씨는 범인들과 격투를 벌인 정황을 상세히 진술했다. A씨는 사건 발생 수년 후 지병을 앓다가 사망했다.

한편 그동안 법원에서는 과거 장씨와 최씨를 고문한 것으로 지목된 경찰들을 불러 진술을 들었다. 재판정에 선 경찰 4명(3명은 퇴직)은 하나같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나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2021년 2월4일 부산고법 형사1부는 강도살인 등 혐의로 21년 동안 옥살이한 최인철, 장동익 씨 재심사건 선고공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 화성 8차 사건 윤씨 사건

2019년 11월 15일 경찰은 화성연쇄 8차 사건의 범인은 지난 20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 재심을 청구(2019년 11월 13일)한 윤성여씨가 아니라, 화성사건의 피의자로 특정된 이춘재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렸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화성사건 피의자 이씨의 자백이 사건 현장상황과 대부분 부합한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사건 발생일시와 장소, 침입경로, 피해자의 모습, 범행수법 등에 대해 이씨가 진술한 내용이 현장상황과 일치하고 피해자의 신체특징, 가옥구조, 주검위치, 범행 후 박양에게 새 속옷을 입힌 사실에 대해서도 이씨가 자세하고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 등을 바탕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 7월 농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던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해, 강간살인 혐의로 검거했다. 재판에 넘겨진 윤씨는 같은 해 10월 수원지법에서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도 형이 확정돼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됐다.

2020년 12월 17일 수원지법 형사 12부는 윤씨의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988년 8차 사건이 발생한 지 32년, 대법원에서 윤씨의 무기징역이 확정된 지 30년만이다.

3. 무기수 김신혜 사건

2000년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김신혜씨 사건의 재심 절차가 사건 발생 19년 만인 2019년 3월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개시됐다.

김씨는 2000년 3월9일 고향인 전남 완도에서 수면제가 든 술을 마시게 해 아버지를 살해한 뒤 주검을 유기한 혐의로 완도경찰서에 긴급 체포됐다. 김씨는 한 달 뒤 구속 기소됐고, 2001년 3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김씨는 수사 초기 경찰에서 아버지의 성추행 때문에 범행했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진술을 뒤집었다. 그는 “용의 선상에 오른 남동생 대신 벌을 받으려고 허위 진술을 했다. 아버지한테 성추행을 당한 적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교도소에 수감된 뒤에도 노역을 거부하는 등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씨는 2015년 1월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경찰이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했고 압수조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수사 절차에 흠결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심이 결정되자 김씨는 석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석방을 허가하지 않았다. 법원은 “재심은 수사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며 “아직 김씨가 무죄라는 명백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재심은 김씨가 수감된 상태에서 열리게 됐다. 재심도 3심을 거쳐야 한다.

검찰은 여전히 김씨에 대한 유죄 판단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아버지는 타살됐고 사인도 분명한데, 당시 행적이나 동기 면에서 김씨를 범인으로 특정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술을 빼고 다른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재심에서도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김신혜 씨는 2019년 6월 현 재판부가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지만, 2019년 8월 기각됐고 이후 한 차례 재판이 속행된 뒤 2019년 9월부터 현재까지 계속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4. 최말자씨 재심 청구

2020년 5월 6일 최말자씨는 성폭행을 시도한 남성에게 저항하다 남성의 혀 일부를 자른 혐의로 자신에게 유죄 판결을 한 법원에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

1964년 5월6일 저녁. 18살이던 최씨는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당시 21살이던 노 모 씨와 마주쳤다. 위협을 느낀 최씨는 친구들부터 집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노씨를 다른 길로 가도록 유인했다. 그러자 노씨는 느닷없이 최씨를 쓰러뜨리고 입을 맞추려고 달려들었다. 최씨는 넘어지면서 바닥에 놓인 돌에 머리를 부딪쳤다. 노씨는 성폭행을 시도했고, 최씨는 입안에 무언가 들어오자 ‘이대로 숨 막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 무언가를 확 깨물어 저항했다. 노씨의 혀가 1.5㎝ 잘렸다.

반면 노씨는 떳떳했다. 노씨는 그날 이후 친구 등 10여명을 데리고 최씨의 집에 찾아와 흉기를 책상에 꽂고 행패를 부렸다. 결국 최씨의 아버지는 최씨가 구속된 사이 노씨에게 돈을 주고 합의를 했다.

경찰은 검찰에 사건을 넘길 때 노씨에게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 외에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검사는 강간미수 혐의를 빼고 기소했다.

최씨는 이 사건으로 이듬해 1월 부산지법 형사부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중상해죄’라고 했다. 반면 노씨의 성폭력은 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노씨에게는 성폭력을 가한 뒤 최씨의 아버지 집에 침입해 협박한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됐다. 노씨는 최씨보다 적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33년만의 진범

최악의 장기미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종막WHY? + HOW? = WHO?1986~1994년 8년 범행 자백에서 범인의 실체까지 미치도록 잡고 싶다던 진범의 과거 행적과 사건의 구체적 전개 상황을 낱낱이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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