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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입에 풀칠도 못하게 하는 이들에게 고함

<입에 풀칠도 못하게 하는 이들에게 고함> 본문.언론 자료에서

by 북콤마 2016. 9. 9.



비좁은 가치 체계 사회에서의 자존감 상실, 사회적 공간 축소

__민생의 어려움은 단순히 먹을거리가 부족하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먹을거리의 충족만을 강조할 때 나오는 결과가 인간적 자존감의 상실이다. 자존감 상실과 사회적 시민권의 부재.

"직장이 없고, 매일 먹을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불안한 상태에 처한 사람을 시민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정치적 투표권이 있다고 다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집주인에게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시민이 되겠는가." (김동춘)

__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살릴 기회가 주어지는 민생이어야 한다. 누구나 지금은 삶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세상살이가 힘든 것은 그러한 기회가 줄어드는 데서 오는 불안과 위축 때문이기도 하다. 

"힘들어도 자기에게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고 느껴지면 세상이 견딜 만하다. 하지만 더 이상 기회가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 주체하기 어려운 절망과 분노가 자라난다." (김찬호)

__IMF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는 돈의 위력 앞에 사회적 자존감이 확 무너지는 시기를 지나왔다. 삶의 기회가 줄어들고, 사회적 공간이 줄어들었다. 민생이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의 심리도 고립되었다. 시장 원리가 일상의 모든 공간을 흡수해버리자 세상에서 '삶'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서울에 사는 노인들이 집 밖에 나와 갈 곳이라곤 지하철 하나밖에 없게 되었다.

"집을 나와서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하철이라는 익명의 공간이라도 가야 사회 속에서 그나마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익명이 아닌 곳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 한 노인은 지하철에서 내려도 갈 곳이 없다." (김찬호)

__이제 민생에서는 어떻게 사회를 다시 만들지, 복원할지가 화두가 되었다. 문화인류학자 김찬호는 이렇게 설명했다.

"개인은 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매 순간 직감한다. 어떤 사회적 공간에 가면 사람들은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를테면 우리가 성당이나 고찰 같은 유서 깊은 건축물을 찾아갔을 때 그곳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받는 경험이 그렇다. 좋은 사회는 소속감만으로 구성원들에게 품격을 누리게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