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간도서/테니스 5세트 클래식

준우승자 소감, 2등을 기억하는 세상: <테니스 5세트 클래식>

by 북콤마 2022. 11. 12.

2인자 스피치

테니스에는 ‘2인자 스피치(loser’s speech)’라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메이저 대회이든 작은 규모의 오픈 대회이든 준우승자에게 먼저 시상하고 장내 마이크를 건네 한마디 할 기회를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준우승자는 패배의 아픔을 온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2등을 기억하는세상

프로테니스는 더없이 외로운 스포츠다. 다른 종목과 달리 코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작전 타임도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히 혼자 해결해야 한다.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아픔도 오롯이 자기 혼자의 몫이 된다. 하지만 테니스 코트는 따뜻한 공간이기도 하다. 승자 못지않게 패자도 함께 위로받는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진다.

2009년 호주 오픈 결승전

__당시 로저 페더러는 라파엘 나달과 5세트 접전을 벌인 끝에 아쉽게 2-3(5-7, 6-3, 6-7, 6-3, 2-6)으로 석패했는데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준우승 트로피를 받고 난 뒤 마이크를 잡은 페더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__페더러는 더는 마이크를 잡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꼈다. 2003년 이후 무려 6년간 세계 테니스계를 주름잡은 절대 권력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3분가량 이어진 페더러의 눈물에 대회 조직위원회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__결국 페더러가 힘을 냈다. 다시 마이크를 잡고 “패자인 내가 더는 시상식을 망칠 수 없습니다. 나달은 정말 대단했고 챔피언이 될 자격이 충분했습니다”라고 힘겹게 소감을 밝힌 뒤 단상에서 내려왔다. 여기서 승자 나달이 마이크를 잡기 전 페더러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위로했다.

2015년 프랑스 오픈 결승전

__노박 조코비치는 2015년 프랑스 오픈 결승전에서 스탄 바브링카에게 1-3 패배를 당해 준우승에 그쳤다. 2012년부터 4년 연속으로 숙원인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해 애썼지만 번번이 문턱에서 좌절한 조코비치였다. 

__조코비치가 시상식에서 2인자 스피치를 막 시작하려는 순간 관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 기립 박수를 치며 “조코비치”를 연호했다. 끝날 줄 모르는 박수 세례는 사이보그처럼 냉철한 조코비치의 마음조차 뒤흔들었다. 

__조코비치는 눈물을 글썽이며 힘겹게 말했다. 내년에 꼭 이 자리에 다시 서겠다고. 결국 그의 눈물 섞인 다짐은 1년 뒤 결실을 맺었다. 

1993년 윔블던 여자 단식 결승

__다 이긴 경기를 놓쳐버린 야나 노보트나의 이름이 먼저 불렸다. 무대 앞에는 늘 윔블던의 시상식을 해마다 책임진 켄트 공작부인 캐서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작부인은 준우승 쟁반을 받으러 온 노보트나의 손을 다정히 잡았다.

__공작부인의 따뜻한 위로를 듣는 순간 노보트나는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던 감정의 끈을 놓고 말았다. 참고 있던 가슴속 서글픔을 담아 억울한 눈물을 쏟아냈다. 인자한 모습의 공작부인은 따뜻이 패자를 끌어안았다. 우승자인 슈테피 그라프조차 패자의 아픔과 공작부인의 품격 높은 위로에 기꺼이 공감의 박수를 쳤다.

 

테니스 5세트 클래식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search.shoppi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