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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중독 인생

중독이란 무엇인가 1: 신경계가 한번 뒤집어진다

by 북콤마 2019. 6. 26.


중독이란 무엇인가 1: 신경계가 한번 뒤집어진다

__천영훈 원장(인천참사랑병원) 인터뷰에서: 

약물 중독은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지금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는 것. 중독되면 삶이 피폐해지는 것도 알고, 그러다 인생이 비참해지는 것도 알면서도, 지금 당장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그 모든 걸 평가절하하고 실행에 옮긴다. 당장이 중요하다는 즉각성. 잊기 위해 당장 약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로폰 중독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 중독자들은 자주 “우리는 천국을 엿본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한다. 투약을 통해 쾌감의 극치를 맛보았다는 말이다. 동물 실험 결과에 의하면, 필로폰을 투약하면 보통 섹스를 통한 오르가즘을 경험할 때 나오는 엔도르핀 양의 13배 정도가 분비된다고 한다. 그것도 6~72시간까지 지속된다. 그 극치감이라는 건 “나를 완벽하게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런 물질에 뇌가 두드려 맞은 뒤엔 평소처럼 삶을 살아가기는 불가능해진다. 좋아하는 차를 한잔 마심으로써 몸 안 보상회로에서 엔도르핀이 나와 스트레스를 녹여주는 소소한 의미는 안중에서 없어진다. 평소의 것보다 13배나 되는 엔도르핀이 한바탕 뒤집어놓은 뇌는 더는 다른 자극이나 행위에 반응하지 못한다. 중독자는 처음 투약할 때의 경험치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즉시 우울해지고 짜증이 생긴다. 약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부터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고통 속의 게임이 벌어진다. 필로폰 중독자의 뇌는 생물학적 쾌감에 발목이 잡힌다.

초기 유저는 자신이 필로폰에 중독되지 않는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자기는 안 된다고 믿고 해. 마약은 두 가지 종류, 즉 뇌를 흥분시키는 약물이 있고 뇌를 안정화하는 게 있다. 억제제 계통은 끊으면 금방 금단 증상이 나온다. 모르핀이나 헤로인을 하는 이는 하루만 거르거나 투약량을 줄여도 금단 증상이 훅 치고 나온다.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고 덜덜 떨면서 배가 아프고 헛것이 보인다고 호소하다, 이불을 뒤집어쓴다. 그런데 필로폰 같은 흥분제 계통은 그런 금단 증세가 없다. 깔끔하다. 그래서 중독되지 않을 거라고 느낀다.

필로폰은 초기에는 투약하지 않는다고 해서 몸이 힘들거나 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느낌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거, 내가 조절할 수 있구나” 싶어진다. 이것을 ‘조절 망상’이라고 한다. 막상 눈앞에 ‘작대기’를 가져다 놓으면, 딱 눈에 보이는데 참을 수 있는 투약자는 없다.

필로폰을 경험한 뇌는 평생 그것이 다시 자기 안으로 들어올 순간을 기다린다. 무의식 기제가 작동한다. 항상 기다리다가 문득 그것이 지나가면 슥 손을 내어 잡는다. 10분 전만 해도 전혀 약 생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나중에 보면 무슨 귀신에 홀린 것 같다고 하겠지만, 뇌가 잠재의식처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의식적으로는 외관상 무관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마침 약을 하다 교도소에서 알았던 친구한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그래도 만나지 않으려 했는데 예전에 빌린 돈을 갚겠다고 하기에 돈만 받으러 나간 것이다. 빌린 돈을 받으러 친구를 만나는 것이니 외관상 무관한 결정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