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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다시 출발선

판결문이 짧아지고 쉬워진다

by 북콤마 2014. 4. 14.

 

일반인들이 소송을 진행하면서 낯선 법률 용어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판결문의 내용 또한 어렵고 너무 딱딱했습니다,

쉬운 판결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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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쉽고 짧게 바꾼다

5월 1심 형사재판부터… 결론 위주로 작성

 정재호기자

어렵고 딱딱한 법률용어와 일상에선 잘 쓰지 않는 한자어, 일본어 번역 문체 등이 빈번히 등장하는 형사 판결문이 짧고 쉬워질 전망이다. 대법원은 1심 형사재판부터 순차적으로 판결문의 분량을 줄이고 쉽게 쓰는 '판결문 간소화 방안'을 마련해 내달 예규를 만들어 시행할 예정이라고 4월 13일 밝혔다.

대법원은 우선 유죄 판결을 내릴 때 유죄의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결론 위주로 간단하게 판결문을 작성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현행 형사판결문을 살펴보면,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에 대해 항목별로 검찰과 변호인의 주장을 각각 나열한 뒤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했는지 모두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판결문의 양은 자연히 늘어난 상태다. 실제로 지난 2월 징역 4년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1심 판결문은 480쪽에 달했고, 같은 달 1심에서 징역 12년을 받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판결문도 472쪽이었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특유의 판결 문체도 바꿀 예정이다. 법률 용어는 법조문을 인용해야 해 어쩔 수 없지만, 한자 및 일본어 번역 문체는 충분히 고칠 수 있다. 예를 들어 판결문에 흔히 쓰이는 '금원(金員)', '불상(不詳)의', '상당(相當)하다' 등은 각각 '돈', '알 수 없는', '알맞다'로 바꿀 수 있다. 또 '사유가 된다고 할 것이다' 등 일본어 '노데아루(のである)'(∼할 것이다)에서 유래한 번역 표현은 '사유가 된다' 로 간략히 표현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판결문의 간소화로 발생할 수 있는 상급심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하급심 공판조서를 폭넓게 활용하고, 사건 당사자가 사건 및 판결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심리를 거치기로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결문이 짧고 쉬워지는 만큼 판사들이 재판에 집중할 여력이 늘고, 전반적인 사법서비스 질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법관들도 판결문 간소화 움직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앞서 지난해 11월 법원행정처가 전국 형사법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판결문 작성업무 비중이 전체 업무의 40%가 넘는다고 답한 법관이 67.5%에 달했다. 또 97.4%가 간소화 필요성에 공감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이 2006년 '법원 맞춤법 자료집'을 배포하고, 서울중앙지법도 지난해 7월 판결문 간소화 방침을 세웠지만 현장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며 "이번에는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