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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33년만의 진범

33년만에 잡힌 '살인의추억' 4: 수원 화서역 여고생 살인 사건

by 북콤마 2020. 7. 14.

사건 시놉시스

수사본부는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기 전부터 범행 수법과 범행 시기 등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주목했다. 1987년 12월 24일 밤 갓 대입 시험을 치른 18세 고3 여학생 김양은 어머니와 다투고 바람을 쐬겠다며 운동복 차림으로 외출했다 실종됐다. 열흘 뒤인 1988년 1월 4일 수원 화서역 근처 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 현장은 경부선 전철 화서역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논 한가운데였다.

볏짚 속에서 나온 시신은 엎드려 양손이 뒤로 돌려진 채 스타킹에 묶이고 입에 러닝셔츠로 재갈이 물려 있었다. 또 하의가 벗겨진 김양은 얼굴에 자주색 파카 상의가 덮여 있었는데 얼굴이 폭행을 당해 부어 있었다. 부검 결과 스타킹에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고 성폭행을 당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부검의는 그것이 화성 연쇄사건의 연장이라고 증언했다. 손목을 묶은 삭흔이 있었고, 하체 중요 부위에 심한 상처를 입은 모습이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같은 나이의 희생자인 화성 5차 사건(1987년 1월)의 여고생과 비슷했다. 두 사건은 범행 수법이 너무나 흡사했다. 화성 연쇄사건의 범인이 수원까지 범행을 저지른 것 같았다.

그러나 ‘화성 살인’과 유사하다며 지난 사건들과 비교한 당시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경찰 측은 그 누구도 이 사건을 화성 연쇄살인과 연관 짓지 않았다. 사건 발생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에서 개별 사건으로 취급됐다.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과 결부해 생각하지 못할 거라는 범인의 짐작이 들어맞은 것이다.

사건별 연관과 교차점

그런데 이 무렵 이춘재는 왜 갑작스레 수원으로 범행 장소를 옮겼을까. 저간엔 그가 1987년 7월 처음으로 경찰 조사를 단단히 받고 ‘화성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부상한 사정이 있다. 경찰이 그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화성 연쇄사건 중간에 이씨가 받은 세 차례의 경찰 조사 중 첫 번째였다. 6차 사건 직후, 그가 1차 사건 직전인 1986년 8월에 일어난 한 강간 사건의 범인이라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면서 촉발된 조사였다. 그러나 경찰은 끝내 이씨의 혐의를 입증해내지 못했다.

이씨는 극도로 신분 노출을 꺼리는 마음에서 자기를 알아보는 이들이 없는 곳에서 범행하려 했다. 강도 높았던 경찰의 1차 조사는 이춘재에게 적어도 일종의 ‘경고등’으로 작용했다.

네이버 책 소개: <33년만의 진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96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