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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14: 난독증 환자

by 북콤마 2021. 8. 10.

글 뒤섞여 보이는 선천적 질환인데, “노력을 안 해”라는 비난에 좌절

__한 신입 사원이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직장을 나온 것은 난독증 때문이다. 업무 매뉴얼을 빠르게 익혀 직무에 적응하려 했으나 같은 글을 읽어도 남들보다 세 배는 더 시간이 걸리는 탓에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__상사 및 동료들과 소통하는 데도 문제가 있었다. 사내에서는 업무 지시를 이메일로 주고받는데 때로 장문의 지시가 오면 이를 정확히 읽는 데만 2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다. 자연스레 업무 속도가 동료들보다 한참 뒤쳐지게 됐다.

__ 난독증에 대한 동료들의 편견에 부딪히면서 도무지 버티기 힘들었다. 동료들이 “난독증을 핑계 삼아 맨날 게으름을 피우는 것 아니냐”고 뒷공론을 하는 것을 들은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코끼리’라는 단어가 ‘리끼코’나 ‘끼코리’처럼 다른 형태로 보인다

__난독증은 두뇌의 언어·읽기 기능과 관련된 영역의 신경 회로 배선이 보통 사람과 달라서 발생하는 증상이다. 이들은 시청각 기능은 물론 지능에도 이상이 없고 오직 무언가를 읽는 데서만 어려움을 겪는다.

__“모두가 윈도를 운영 체제로 사용하는 세상에서 홀로 리눅스라는 다른 운영 체제를 쓰는 것”: 단지 입력 및 작업 방식이 다를 뿐 무엇을 사용하든 컴퓨터는 작동한다는 것이다.

 

통계

__우리나라에 난독증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인지를 조사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난독증이 있어도 그 사실을 숨기려 하거나, 자신이 난독증인 것을 모른 채 그저 머리가 나쁘다고 체념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__교육부가 2015년 전국 154개 학교를 표본으로 실시한 ‘난독증 현황파악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초등생 8575명 중 4.6퍼센트가 난독증 또는 난독증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__이처럼 난독증이 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사람들은 종종 ‘문해력 부족’과 난독증을 혼동한다.

__문해력은 글을 읽고 뜻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다양한 글과 책을 반복해 읽음으로써 계발이 가능하다. 반면 난독증은 글자 자체가 뒤섞여 보이는 증상인 데다 선천적 질환이라 완벽한 개선은 어렵다.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난독증 환자에 대한 배려 없음

__ 2010년부터 난독증도 학습장애로 분류돼 특수교육 대상에 포함된 건 다행이다. 그러나 병원에서 난독증 진단을 받아 시도 교육청에 제출해도 대면 진단·평가에서 일부 단어를 읽거나 지능지수가 70 이상이면 학습장애로 간주하지 않는다.

__학교 내 도움반(특수교육반)에 들어가려 해도 난독증에 대해 잘 아는 특수교사가 드문 데다 ‘다른 지적장애 학생과 공부하기엔 지능이 높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기 일쑤다.

__2018년 7월 한국난독증협회 등 관련 단체들은 난독증 학생을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시간을 연장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했다. 난독증이 특수교육 대상으로 분류됐지만 정작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험 특별 관리 대상자에서 제외된 것이 차별이라는 것이다.

__“꼭 시험 시간을 연장하지 않더라도 감독관이 시험 문제를 읽어줄 수만 있다면 이를 듣고 문제를 풀 수 있을 것.”

 

늦어도 초등 1학년부터 치료 시작해야

정부 차원에서 조기 발견할 체계를 마련해야

__난독증 환자와 학부모가 가장 애타게 바라는 것은 ‘조기 발견’이다. 전문가들은 언어 학습을 시작하는 시기인 4~6세, 늦어도 초등학교 1학년쯤에는 난독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__하지만 그동안 교육 현장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흔했다. "담임교사와 상담했는데 그때마다 ‘조금 (배움이) 늦는 것이니 기다려보자’는 얘기만 들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끝날 때쯤에야 정확한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많이 늦은 시기였다.”

__학교에서 난독증 학생을 선별할 수 있는 방법은 기초학력진단검사 실시. 그런데 취학 후에 받는 첫 번째 기초학력진단검사는 이미 난독증이 상당히 진행된 뒤인 초등학교 3학년에야 실시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난독증 검사를 매년 실시하고 정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__일부 난독증 학생은 시각장애인용 음성 교재를 빌려 겨우 공부해나가는 상황인데 그마저도 초등학생용만 지원된다. 특히 전문 기관의 난독증 치료가 회당 10만 원에 육박하는 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혹시 난독증?"... 농담처럼 소비될 질환 아닌데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www.hankookilbo.com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한국 사회에서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이 말하는차별 속 또 다른 차별, 타인의 시선!소수자의 삶을 공들여 취재해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적 인식을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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